[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수학여행은 ‘배움나들이’를 한자로 만든 용어로 학교에서 학습 활동의 일환지로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에서 학습 활동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특정 지역을 직접 답사해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수학여행의 목적이다.
일제강점기, 관광산업 활성화 목적
우리나라에서 수학여행이 시작된 것은 1886년부터인데 본격적인 것은 1907년부터이다. 학교 밖의 사회에 대한 경험과 관찰 목적을 담고 있다.
그것은 대한제국 당시 선진문물을 배워서 그것을 다시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용도였다. 1883년 조선이 미국에 보빙사라는 외교 사절단을 파견했는데 수학여행은 ‘보빙사’의 학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민족의식 고취의 수단으로 수학여행을 이용해왔다.
하지만 1910년 한일병탄이 일어난 후 조선총독부는 수학여행을 금지시켰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조선총독부가 전환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철도산업을 일으키고, 관광업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생산기반이 없었던 조선에서 조세 수입을 늘려야 하는 조선총독부로서는 관광업을 일으키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규모로 사람들이 관광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를 주목했다.
이와 동시에 수학여행에 친일적인 내용을 가미하면서 ‘세뇌’를 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당시 수학여행지로 ‘경성’ ‘신의주’ ‘원산’ ‘일본’등을 집어넣은 것은 일제의 근대시설·신문물을 접하게 해서 일본이 우월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경주, 평양, 강화 등도 수학여행지로 인기가 높았지만 조선총독부는 통제를 강력하게 했다. 일제는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는 일본의 영향을 계속 받아왔다는 식민사관을 주입하는 해설을 학생들에게 했다.
해방 이후
해방 이후 수학여행은 세뇌적인 목적을 버리고 관람과 교육적 목적으로 바뀌었다. 학교 밖의 사회에 대한 경험과 관찰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다만 한때는 수학여행을 반강제적으로 가는 것으로 인식됐다. 학교에서 가정통지문을 각 가정에게 발송하면 일부 가정은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월사금(등록금)도 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수학여행 경비 마련은 가정에 큰 부담이 됐다. 그리고 각 학교는 여행사나 전세버스 회사 등등과 연결돼서 부정부패가 판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수학여행이 자율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가기 싫은 학생들은 가지 않아도 됐다.
왜 하필 경주
수학여행지 하면 떠오르는 장소가 바로 경주이다. 경주가 대표적인 수학여행지로 꼽힌다. 그 이유는 신라의 문화유산이 많이 담겨져 있는 동네가 경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시설도 인접해 있다는 것이다. 울산이나 포항 등에서는 산업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런 이유로 박정희 정권 시대 때부터는 눈부신 경제발전의 현장을 목격함으로써 정권홍보의 효과를 위해 경주를 선호하기도 했다.
즉, ‘문화유적’ 관람과 더불어 산업시설 시찰로 이뤄진 프로그램은 박정희 정권 홍보의 목적도 담겨져 있다.
그러다가 군부독재가 물러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경주는 수학여행지로 꼽히고 이다.
다만 1980년대 경제성장을 하면서 ‘해외로 나가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제주도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동남아 등이 수학여행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수학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 관광업계가 시름을 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