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팔도 물산의 집합지
마포나루는 조선 팔도 물산의 집합지였다. 한강에서 가장 강물의 속도가 약하기 때문에 배를 접안하기 가장 좋았다. 특히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 지방에서 올라은 각종 물자들이 강화도를 지나 한강 하류를 타고 한양으로 올라오면 마포나루에서 물자를 내렸고, 숭례문(남대문)을 통해 한양으로 들어오는 등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물론 송파나루도 있었지만 송파나루는 주로 북한강과 남한강을 타고 흘러 내려온 물자들이 집합하는 장소였다. 마포나루는 삼남 지방의 물자가 집합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쌀이 넘쳐났고, 소금이 넘쳐났다. 쌀과 소금은 조선왕조의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 물자이기도 하다.소금이 넘쳐난 마포나루
마포나루에 소금이 넘쳐나면서 소금장수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소금장수들이 장사를 하던 장소가 ‘염리동’이다. 즉 소금거리를 염리동으로 명명한 것이다. 소금이 넘쳐나니 자연스럽게 젓갈도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강화도에서 생산되는 새우가 마포나루에 내리게 되면 소금과 함께 절여지면서 새우젓이 만들어졌다. 염리동에서는 소금뿐만 아니라 새우젓도 판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염리동에서 새우젓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젓갈을 보관해야 하는 옹기의 수요가 늘어났다. 이에 옹기를 굽는 동네라는 뜻으로 용강동이 탄생했다. 새우젓 판매가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은행도 생겨났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새우젓이 날개 돋힌 듯이 팔리면서 일제강점기에서는 새우젓 판매에 따른 현금이 쌓이자 새우젓 장수들을 상대로 하는 은행이 개설됐다. 당시 마포에서 남대문을 거쳐 종로 그리고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전차 안에는 새우젓 옹기가 많았다. 이들 옹기는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까지 이동했다. 새우젓이 풍부해지면서 상인들도 많이 나오게 됐고, 상인들이 모여서 만든 조합이 경강상인이다. 경강상인은 새우젓 판매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엄청난 권한을 행사했다. 마포에 새우젓이 넘쳐나면서 새우젓과 관련된 음식들 역시 많이 나오게 됐다. 그러면서 마포 지명을 딴 그런 음식들도 넘쳐나기에 이르렀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