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는 신성 지역
소도는 신성지역이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도피할 수 있는 장소였다. 워낙 신성시한 장소이기 때문에 권력이 여기를 미치지 못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제사장을 뽑았는데 이 제사장을 ‘천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소도를 만들었는데 소도라는 지역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솟대를 세웠다. 다만 제정일치 국가에서는 제사장이 권력자이기 때문에 소도에 범죄자가 들어간다고 해도 천군이 처벌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럽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죄수라도 신전에 들어가면 함부로 끌어내지 않았다. 대신 모든 창문과 출입문을 막아서 신전 안에서 굶겨 죽인 사례가 있었다. 중세 도시의 교회나 묘지 역시 소도의 성격이 강했다. 범인이 교회 입구 문고리를 잡으면 체포하지 못했다. 묘지 역시 범죄자가 들어가면 붙잡지 않았다.현대에서도 소도 역할
현대 들어오면서 독재정권 당시 시위대의 피난 은신처가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명동성당이 대표적이다. 개신교의 경우 기독교회관이나 향린교회가 그 역할을 했고, 불교계는 조계사 역시 해당 역할을 했다. 다만 시위대가 너무 과격하다 싶으면 퇴거를 요청했다. 예컨대 시위대가 오물과 쓰레기를 아무데나 내버렸다가 명동성당이 퇴거 요청을 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집시법 위반으로 수배됐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측에서 퇴거를 요청에 버티다가 결국은 조계종 당국과의 합의에 따라 퇴거하여 남대문 경찰서로 자진 출두한 전력도 있다. 소도 역할을 하는 곳이 종교시설만은 아니었다. 대학도 있었다. 독재정권 시절 수사관들이 함부로 대학 구내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수사기관들은 프락치를 심어두는 방식으로 감시를 했다. 이런 이유로 서울대 프락치 사건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로 운동권 학생 중 일부는 수사기관에 협조를 하면서 프락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프락치 역할이 끝나면 수사기관에 들어가 경찰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