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26 사태
[역사속 오늘리뷰] 10.26 사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10.26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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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79년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된 날이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날로 기억될 뻔했지만 곧바로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주의의 봄은 요원하게 됐다. 이날 김재규 부장이 쏜 총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섞여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였다.

유신체제로 고도성장 하지만 그 끝은

1972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를 만들었고, 1차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수출주도산업화와 함께 중공업 육성으로 20%를 넘는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박정희식 경제개발은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제조업 수출품은 저가격으로 세계시장에 공급됐다. 이런 이유로 경공업 중심으로 수출산업이 구성돼있다. 또한 그러면서 중공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다. 그리고 중공업에서 실적을 나타내기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가운데 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은 계속해서 상승을 하면서 이윤율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경영활동을 해도 이윤을 남기는 것이 힘들어졌다. 임금 노동자는 임금 노동자대로 힘들고, 사업가는 사업가 나름대로 힘들 수밖에 없었던 1979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제2차 석유파동이 타격

게다가 1979년 제2차 오일쇼크가 도래하면서 부동산 침체, 수출 부진, 물가 급등 등이 발생했다. 석유파동은 사람들의 의식주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했고, 이것이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게 되면서 박정희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따라 권력이 권력을 감시하는 체제로 바꾸게 된다. 자신이 5.16 쿠데타를 통해 집권을 했기 때문에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해 권력기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체제로 바꾼 것이다. 이에 ‘경호실’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세 곳이 감시와 견제를 담당했다. 하지만 이미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싸늘한 여론을 경험한 중정 김재규 부장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10.26 사태 등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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