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7일 영화의 날
[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7일 영화의 날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10.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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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19년 10월 27일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가 상영된 날을 기념해서 영화의 날이 만들어졌다. 1919년 김도산이 극본·연출하녀 만들어진 ‘의리적 구토’가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개봉됐다. 이 날을 기념해서 영화의 날이 된 것이다. 다만 이 영화는 영화라기 보다는 기차나 서울역 등 극장 무대에 올릴 수 없는 장면을 촬영해 연극 공연 중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연쇄극’ 형태였기 때문에 영화가 아니라 연극에 가깝다는 지적이 있다.

구토는 ‘원수갚음’

의리적 구토라고 하니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먹을 것을 게워내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원수 갚음’이라는 뜻의 일본어 ‘아다우치’(仇あだ討うち)의 한자 표기이다. 김도산 일행이 경엥서서 촬영된 활동사진을 27일 단성사 무대에 올릴 것이다. 남대문 등 서울 시내 곳곳을 촬영한 것을 영사하고, 그 배경을 바탕으로 배우의 실연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야말로 신기해 했다. 의리적 구토를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로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스토리가 갖춰진 촬영물은 영사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배경을 촬여한 것을 영사하고, 그 배경을 바탕으로 배우들이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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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의 맹세가 최초?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월하의 맹세가 최초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1923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계몽을 목적으로 제작한 관제 영화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무성영화 시대의 막을 연 작품이며 기승전결의 줄거리를 온전히 필름에 담은 영화이다. 1923년 4월 9일 경성호텔에서 기자와 관계자 100여명을 초청해 시사회를 한 후 서울과 경기도를 시작으로 지방을 돌며 무료 상영하면서 저축 사상을 선전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계몽 목적으로 제작한 관계 영화이기 때문에 최초 영화로 볼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영화 아리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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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아리랑부터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영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나운규의 아리랑을 꼽고 있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조선키네마주식회사]를 통해 영화계에 뛰어든 춘사 나운규가 주연 겸 감독 겸 제작 겸 각본으로 참여했다. 1926년 당시 엄청나 흥행을 거뒀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영화는 나운규 아리랑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적으로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아리랑’은 나운규의 아리랑에서 나온 노래이다. 즉, 영화 OST가 현재 우리나라 민요로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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