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31일 종교개혁 시작
[역사속 오늘리뷰] 10월 31일 종교개혁 시작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10.31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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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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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내걸어 종교개혁의 출발을 알린 날이다. 종교개혁은 카톨릭에서 개신교가 나온 날이고, 중세를 넘어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르틴 루터의 95개 반박문은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고, 그 이전부터 종교개혁에 대한 열망이 사람들 사이에 심어져 있었다.

면죄부에 대한 비판?

마르틴 루터의 95개 반박문은 면죄부, 성유물 판매 등 카톨릭 교회의 부패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면죄부, 성유물 판매가 교황의 권위를 끌어내릴 정도의 부패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성직자의 부패는 성직자를 축출하면 되는 문제였지만 마르틴 루터의 반박문은 성직자를 축출하는 문제를 넘어 신학의 교리를 바꾸는 문제가 됐다. 이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간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왕과 신화(봉신), 교황과 왕의 관계는 ‘봉토’ 즉 영지에 기인했다. 왕이 신하에게 영지를 하사하는 형식으로 주군의 계약 관계를 맺고, 왕 역시 교황과 영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주군 계약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자유도시 코뮌들의 출현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도시 자치는 주교가 맡았다. 주교는 도시별로 선출하면서 일종의 시장과 같은 존재였다. 도시민들은 교황의 간섭이 강할 때는 황제에게 결탁했고, 황제의 간섭이 심할 때는 교황에 결타하는 식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것이 깨지게 된 거이 아비뇽의 유수이다. 아비뇽의 유수로 인해 교황권이 결정타를 맞이하게 되고, 그로 인해 황제의 권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교황은 자신의 권위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면죄부와 성유물 판매 등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코뮌 입장에서는 더 이상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것이 결국 마르틴 루터의 95개 반박문으로 표출된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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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과 속권의 분리

마르틴 루터의 95개 반박문으로 시작한 종교개혁은 유럽 역사에 교권과 속권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신성로마제국 카롤 5세 역시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권위를 인정해줬고, 그로 인해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이뤄지면서 교권과 속권이 분리되자 신성로마제국은 더 이상 교권에 휘둘리는 나라가 아니게 됐다. 이를 여러 제후들이 잘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교황의 권위에 눌려 지내던 여러 제후들이 이제는 교황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권위를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종교개혁은 칼뱅주의와 청교도 등을 낳아았고, 이것이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종교개혁과 자본주의 태생이 직접적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과 속권의 분리는 도시의 발달을 촉발하게 됐고, 도시의 발달은 자본가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산업혁명으로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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