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푼디움의 폐해
고대 로마는 로마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군단병을 유지했다. 대부분의 자영농은 평소 자신의 땅에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에 들어가서 군인이 됐다. 그리고 정복활동을 통해 자신의 땅을 넓혀나가는 방식을 사용했다. 문제는 로마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전쟁이 장거리 원정으로 바뀌게 됐다. 초창기에는 1~2년 걸렸던 전쟁이 3~5년 정도 걸리게 됐다. 돈이 많은 귀족 등은 노예 등을 통해 농사를 지을 수 있었지만 자영농은 그러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땅을 팔아야 했다. 물론 원정에서 승리를 하면 재산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패배를 한다면 재산을 획득할 기회는 없었다. 원로원 등 귀족들은 패배를 해도 큰 손실을 입지 않았지만 자영농은 사정이 달랐다. 그러다보니 파산을 하게 됐다. 파산한 자영농은 로마로 상경해서 수많은 무산자 계급이 됐고, 일거리를 찾아 로마 시내를 배회해야 했다. 자영농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로마 군단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로마 군단의 약화를 초래하고, 로마 군단의 약화는 다시 자영농의 몰락으로 이어졌다.형제의 농지개혁
형제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그러나 평민들을 수호하다 죽은 인물들이다. 이는 원로원과의 갈등 때문이다. 원로원이 농지개혁에 반대를 하자 형제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평민 집회가 가진 입법권을 적극 활용해서 원로원의 의사에 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원로원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면서 결국 암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왜냐하면 원로원이 실질적인 로마 최고 권력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호민관의 권력이 막강했지만 원로원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호민관이 황제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지만 원로원들의 권한은 그 보다 더 막강했다. 원로원은 그라쿠스 형제가 자신들과 같은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라쿠스 형제가 무산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주면서 결국 갈등을 벌였고, 초법적인 행동 즉 암살을 자행하게 됐다. 이로써 로마는 피와 폭력으로 얼룩지게 됐다. 그라쿠스 형제의 농지법은 황제들도 시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득권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의 한계를 정하고, 부의 재분배를 이뤄내는 것이 현대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원로원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 황제로서도 농지법 개혁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