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리딩의 시작
원래 치어리딩은 남성들이 도맡았다. 1877년 프리스턴 대학교에서 치어리딩이 시작됐다. 그 이후 1898년 미네소타 대학교 학생인 조니 킴벨이 군중을 이끌고 치어리딩을 했다. 그리고 1898년 11월 2일 조직된 치어리더의 공식 생년월일이 됐다. 이후 1903년엔 최초로 남자 대학생으로 구성된 치어리딩 단체 ‘Gamma Sigma’가 생겨났고, 1923년부터는 여학생도 응원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체조, 텀블링, 메가폰 등이 사용됐으며, 이는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치어리딩은 그야말로 치어리딩이 아니라 묘기에 가깝다. 이런 이유로 훈련도 엄청 많이 해야 한다. 그만큼 상당한 인기가 많다. 과거에는 남성이 주로 치어리딩을 했지만 이제는 여성이 주로 도맡아 하고 있는데 남성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치어리딩이 치어댄스 수준이 아니라 묘기 수준이기 때문에 단순히 미모만 뛰어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체력도 뒷받침돼야 한다.한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치어리딩은 1929년 박문서관에서 발행한 축구응원가를 기원으로 해서 대학 응원단이 주도로 시작됐다. 1980년대 프로야구가 도입되면서 프로 치어리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팀 응원가에 따라 하기 쉬운 동작을 붙이면서 치어리딩보다는 치어댄스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대학가에서는 액션치어리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면서 프로스포츠에서의 치어댄싱과 대학가의 치어리딩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2003년에 사단법인으로 치어리딩협회가 생겨났고 공식적인 국가대표는 2009년에 첫 출전을 하였다. 2022년까지 매년 출전하고 있으며 최고 성적은 세계대회는 3위, 아시아대회는 2위이다.프로스포츠 치어리딩
프로스포츠 치어리딩을 치어댄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강도 액션을 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응원 문화 때문이다. 우리나라 응원 문화는 리더에 따라 단일대오로 응원을 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응원은 몸소 참여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주로 응원단장을 중심으로 응원을 펼치기 때문에 치어리더 시스템은 응원단장을 보좌하는 역할 정도로 전락했다. 외국에서는 구호를 따라하거나 노래를 따라하는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응원문화는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하더라도 동작을 병행한다. 그러다보니 치어리딩 역시 응원단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동작 등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치어리딩보다는 치어댄스에 가까운 수준이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