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11.09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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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8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날이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독일이 통일독일로 거듭난 날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독일은 소련과 미국에 의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다. 문제는 수도 베를린이 둘로 쪼개지면서 장벽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 장벽이 이날 무너지게 되면서 그에 따라 통일독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우리나라에게는 남다른 소식으로 들려왔다.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월요 시위

1989년 9월 라이프치히에서 월요 시위가 발생했다. 이를 기폭제로 동독 전역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동독 사람들은 언론 자유화, 여행 자유화를 요구하ᅟᅧᆫ서 매주 시위를 벌였고, 동독 지도부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불간섭 정책을 고수했다. 이에 동독 지도부는 성난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11월 9일 오후 6시 58분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여행 자유화 정책을 발표하다. 문제는 이탈리아 기자가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되느냐”고 질문을 했고, 당시 서기 권터 샤보프스키가 별 생각 없이 “지연 없이 즉시(Sofort, unverzüglich)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언론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긴급 타전을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수많은 동서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동서독인들은 공구를 갖고 와서 장벽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동독 국경경비대원들이나 세관원들이 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인파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했다. 장벽 해체 소식이 들리면서 서독인들이 더 몰렸고, 축제 분위기를 보였다. 동독 사람들은 서독인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장벽을 넘었다.

경계의 목소리도

하지만 이런 소식을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장벽 붕괴가 곧 통일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을 한다는 것은 곧 강대국의 출현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주도권이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유럽인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장벽은 빠르게 무너졌고, 통일을 이뤄냈다. 1990년 10월 통일이 공식 선언됐다. 그 이후에도 장벽은 계속 무너지고, 도로와 철도가 복구가 이뤄졌다. 이제는 베를린 장벽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 때문에 박물관 곳곳에서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가 전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베를린 장벽의 잔해가 있다.

서독은 통일 원하지 않았지만

사실 서독 입장에서는 통일을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이 통일 하면서 유럽의 종주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됐다. 다만 급속한 통일은 독일의 고질적 문제로 남아있는데 그것은 서독과 동독 지역의 경제적 격차이다. 2019년 동독 지역 평균 임근은 서독 지역 88.8%이다. 동독 지역 경제력은 서독 지역의 73%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통일로 얻는 경제적 효과가 상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통일에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가치도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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