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2월 6일 바나나 대학살
[역사속 오늘리뷰] 12월 6일 바나나 대학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12.0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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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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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28년 12월 6일은 콜롬비아에서 바나나 대학살이 일어난 날이다. 바나나 플랜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시작했지만 콜롬비아 정부는 군인을 동원해서 학살을 가했다. 바나나 플랜트는 예나 지금이나 식민지의 상징이면서 노동력 착취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바나나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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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상징 바나나 플랜트

바나나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통해 전세계로 보급될 수 있었다. 다국적 기업 덕에 바나나가 대중화됐지만 그로 인해 노동착취를 넘어 식민지화에 공헌한 것이 바로 바나나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바나나 플랜트를 위해 식민지의 민주주의 대신 독재정권을 후원하면서 엄청난 양극화를 공헌하기도 했다. 바나나는 잘 무르는데다 벌레가 쉽게 꼬이는 등 빨리 상하기 때문에 장거리 유통에 적합한 과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엽 미국-멕시코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라틴아메리카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뉴욕 출신 청년 사업가 마이너 키스는 1898년 코스타리카 철도 부설권을 따내면서 바나나 독점 수출권을 함께 획득했다. 이에 열대우림을 밀어버리고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을 늘려갔다. 그러면서 거대 과일 메이저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바나나가 사업이 된다고 판단한 다국적 기업들이 너도나도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을 늘려가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경쟁이 격화되면서 보다 저렴한 인건비를 통해 보다 강도 높은 노동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결국 오늘날 바나나 플랜트의 형태가 됐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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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처우 개선 요구하면서

1928년 11월 12일 콜롬비아 산타 마르타 근처 시에나 가 마을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그들의 요구는 노동 환경 처우개선이었다. 콜롬비아의 미국 관리들과 다국적 기업 회사들은 노동자 파업을 ‘전복적인 경향’을 지닌 ‘공산주의자’로 묘사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는데 콜롬비아 정부가 United Fruit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은 경우 미 해병대를 투입해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을 한 것이다. 결국 콜롬비아 정부는 이들 노동자를 진압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경찰력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군인들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100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는데 군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했다고 표현했다.

아직도 사상자 숫자 엇갈려

콜롬비아 정부는 47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지만 미국 대사는 군인들이 1천명 이상 사살했다고 보고했다. 희생자가 최대 2천여명이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결국 바나나 플랜트 노동자들의 파업은 무자비한 학살로 끝났다. 오늘날 바나나 플랜트 등 이른바 플랜테이션 농장들의 노동자 처우개선이 많이 됐지만 여전히 노동환경은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플랜트 농업이 식민지의 상징이면서 노동자의 착취가 깃들여져 있는 것이 오늘날 열대 과일이나 커피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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