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당시 영국 노동자의 현실
숙소하면 가장 끔찍한 사례가 바로 산업혁명 당시 영국 노동자 숙소이다.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하는 상황 속에서 영아 사망률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인구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노동력 공급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됐다. 이에 부르주아들이 일방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게 됐다. 이런 이유로 제대로 된 근로시간이 정해지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 만 7세부터 노동력에 동원된 아이들은 요절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문제는 당시 농촌사회가 붕괴되면서 많은 인구들이 도심으로 공장으로 몰렸다. 그러다보니 번번한 숙소를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임금은 최소 생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었다. 집을 구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결국 공장 등에서 기거를 해야 했다.구세군 관짝은 그야말로 구세군
이런 이유로 각종 숙박시설이 등장했는데 가장 좋은 편에 속하는 것은 구세군 관짝이었다. 하루에 4~5페니 정도인데 영국 구세군에서 운영을 했다. 구세군 관짝은 그야말로 관에 들어가서 자는 것이었다. 담요를 덮을 수 있기 때문에 얼어죽지 않았고, 아침에 커피나 빵조각이 제공되는 경우가 있었다.나름 시설이 다른 숙박시설에 비해 좋았기 때문에 영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는 숙박시설이었다. 또 다른 숙박시설은 2페니 행오버였다. 주요 고객은 노숙자인데 주로 줄에 몸을 걸고 자는 것이다. 난방이 없기 때문에 겨울에는 밤새 얼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나마 아침 5~6시 깨울 때 그냥 줄을 끊어버린다. 또 다른 숙소는 하룻밤 1페니 짜리가 있다. 그것은 의자만 제공되는 것이다. 밤새 추위와 비를 피하라는 뜻으로 만든 숙박시설이다.노동자들의 저항 점차 늘어나고
이같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거주 조건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심이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등의 문학작품에서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칼 맑스도 영국 산업혁명을 지켜보면서 자본론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1810년대 러다이트 운동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의 항의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에서는 처음에는 탄압을 했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번져 나가면서 노동자의 요구를 아예 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1833년 규제 법률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