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당시 800만달러 흥행
149만 9천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800만 달러의 흥행을 거뒀다. 당시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단편 이외에는 없었다. 그 이유는 장편을 제작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장편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평론가들의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밑 빠진 독’이라고 평가했다.아무도 만화를 90분 동안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를 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개봉되자 관객들은 영화 상영이 종료되자 기립박수를 보냈다. 난쟁이들이 백설공주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꽃을 바칠 때는 극장이 울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특히 당시 백설공주 관련 연극에서 난쟁이를 왜소증 배우들을 고용했기 때문에 바보 같은 이미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난쟁이는 그야말로 난쟁이를 표현했기 때문에 난쟁이에 대한 관객들의 거부감이 사라졌다. 해당 애니메이션으로 월트 디즈니는 11회 아카데미 공로상(Honorary Awards)을 수상했다.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향 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가 흥행에 성공을 하면서 디즈니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와 같은 요소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갔다. 그 이전에 미키마우스를 만들기는 했지만 동화를 기반으로 해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이때부터 장편 애니메이션에 집중을 한다. 다만 2차 세계대전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흥행을 하지 않았지만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본격적인 흥행을 하면서 오늘날 월트 디즈니의 왕국이 세워지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