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2월 29일 운디드니 학살사건
[역사속 오늘리뷰] 12월 29일 운디드니 학살사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12.2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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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드니 학살사건 다룬 영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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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90년 12월 29일 미 육군 제7기병연대가 사우스다코타주(州) 운디드니 거주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날이다. 이 학살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는 남성 90명 여성 및 아동이 200명이었다. 그야말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대량 학살 당했다. 서부개척 역사는 백인이 아메리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을 몰아내고, 학살하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학살 당한 원주민의 절규

서부개척으로 인해 자신의 땅을 빼앗긴 원주민들은 1889년 유령춤(Ghost Dance)이라는 새로운 영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부족의 죽음, 영토의 강탈, 파괴된 생활방식 등으로 얼룩진 자신의 현재 삶을 애도하고, 이는 천국의 삶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백인 개척민들은 악마적 의식이면서 국가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이유로 금지를 시켰다. 이에 원주민들은 유령춤을 포기하는 대신 백인들과 가깝게 지내던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가 있는 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하지만 미 육군은 제7기병연대를 보냈고, 원주민들은 항복을 했다. 이에 제7기병연대는 보호구역으로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운디드니 냇가에 천막을 치고 감시를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우족의 무기를 수거하려는 제7기병연대와 수우족 군인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이 과정 속에서 우발적으로 총격 사건이 발생했으며 미국 군인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제7기병연대는 원주민이 공격을 한다면서 천막 안에 있던 원주민들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고, 대포와 기관총을 난사했다. 문제는 제7기병연대에게 학살 당한 사람들 대다수가 여자와 어린아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제7기병연대는 부상 입은 원주민들이 치료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눈보라 치는 마차에 방치해서 얼어죽이기도 했다. 당시 제7기병연대가 원주민에게 공격을 받는다고 판단해서 원주민을 학살했지만 사실 미군의 오발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원주민들은 활과 화살이 유일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미군이 총격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원주민들이 총을 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운디드니 학살사건 다룬 소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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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학살사건과의 연관성

하지만 제7기병연대는 원주민과의 전투를 치렀다면서 운디드니 전투로 표현했다. 이는 양측이 동등하게 무장을 한 상태에서 군인과 군인끼리의 싸움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학살 당한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는 점에서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다. 이런 이유로 원주민들은 운디드니 학살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에 알리려고 했다. 대표적으로 1973년 2월 27일 AIM(미국 인디언 운동) 소속의 오글라라 라코타 부족 200여 명이 운디드니 마을을 점거하며 11명을 인질로 잡고 보호구역 내에서의 부정부패 조사 및 처벌, 그리고 원주민들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해결을 호소했다. 하지만 미 육군은 일방적으로 병력을 투입해서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원주민 2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이 알려지면서 운디드니 학살사건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사건을 알게 된 배우 말론 브란도가 1973년 제4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대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음에도 시상식장에 직접 나가서 받는 것을 보이콧+인디언 협회 대표라는 젊은 원주민 여성을 대리인으로 참석시킨 뒤 수상 소감으로 원주민 인권운동에 대해 말하도록 만드는 식으로 간접적인 항의를 한 일화가 매우 유명하다. 또한 제7기병연대는 60년 후인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일으킨 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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