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출연으로 바빠지겠다고 했지만
김씨가 사망하기 하루 전인 5일 도종환 시인의 시를 포크송으로 불러 수록할 음반의 제작 계획을 관계자들과 의논했다. 그리고 자신의 팬클럽인 ‘둥근소리’ 회장을 만나 “앞으로 TV 출연도 많이 하고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고, 다음날인 6일 오전 9시까지 회장과의 만남 약속을 잡아두기도 했다. 또한 17일부터 라이브 공연을 가질 계획까지 세웠다. 이후 박상원의 겨울나기에 출연해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불렀고, 그것이 마지막 방송활동이 됐다.부인과 술자리 가진 후
오후 8시에 방송 녹호가 끝나자 김시는 대학로 술집에서 절친 박학기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후 잠시 잠을 잔 후 10시께 인근에 위치한 가게에서 백창우 시인과 한국 현대시를 노래로 만드는 ‘노래로 만나는 詩’라는 차기 음반의 편곡, 재킷 등 여러 계획을 논의했다. 백창우와의 논의가 끝난 후 0시 30분 자택에 귀가해서 아내와 함께 맥주 4병을 마시고 안방에 들어가 잠들었다. 아내가 새벽 3시30분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와보니, 거실 옆에 있는 옥상인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후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 조사에서 평소 조울증 증상을 보여왔다고 아내는 증언했다. 그리고 라이브 콘서트 1천회 기록을 세운 후 음악세계에 한계를 느낀다면서 허탈감을 호소했다는 주변 동료들의 진술에 따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1월 8일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앞에서 유가족, 김민기, 백창우, 안치환, 노찾사, 동물원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이 참여한 가운데 노제가 이뤄졌고, 벽제 화장장에서 시신이 화장됐다. 그리고 1997년 1월 11일 백창우가 김광석의 미발표곡 ‘부치지 않은 편지 1,2’를 담은 추모 음반 ‘가객’을 1주기 기념으로 발표했고, 해당 노래는 영화 JSA의 OST가 됐다.음모론도
워낙 급작스런 죽음 때문에 각종 음모론이 나왔다. 특히 부인과 죽음이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우리나라 사법부는 부인과 죽음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