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월 12일 에치슨 라인 선포
[역사속 오늘리뷰] 1월 12일 에치슨 라인 선포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1.12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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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50년 1월 12일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딘 에치슨이 미국 극동 방위선인 에치슨 라인을 선포한 날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에치슨 라인이 남침유도를 했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최근 들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다수설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치슨 라인으로 인해 에치슨 국무장관은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다.

에치슨 라인 발표

에치슨은 당일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열린 미국 신문기자 협회에 참석해 ‘아시아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연설 내용은 소련과 중국의 영토적 야욕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극동방위선은 알류샨 열도 - 일본 - 오키나와 - 필리핀을 연결하는 것으로 이른바 에치슨 라인이 됐다. 에치슨 라인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남침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에치슨 자신도 해당 선에 대해 아주 가볍게 생각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힉도 했다.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인을 물론 미국내 보수파에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에치슨 라인은 미 육군이 직접적으로 관할하는 지역

에치슨 라인은 미 육군이 직접적으로 관할하는 지역을 말한다. 1949년 6월 26일 한반도 남쪽에서 미군이 전면 철수를 하면서 한반도가 에치슨 라인에 포함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한국은 독립국이면서 한국군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에치슨 라인에 포함됐다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타이완이 에치슨 라인에 빠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미국 육군이 직접 군대를 주둔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에치슨 라인에 포함됐다. 필리핀 역시 마찬가지다. 에치슨 라인을 언급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 플랜으로 인해 서구 유럽 국가의 경제적 성장에 미국이 집중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극동 지방에서 미국 육군이 직접 주둔해서 관할해야 하는 지역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49년 6월 26일 미군은 철수를 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약 에치슨 라인에 한반도 남쪽을 포함했다면 당시 소련이나 중공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 북진통일에 부담 느낀 미국

더욱이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1949년 6월 26일 미군이 철수를 할 때에도 무기를 대거 철수를 시킨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미군이 갖고 있는 무기를 그대로 한반도에 놔두고 철수를 하게 된다면 이승만 정권은 그 무기를 갖고 북진했을 것이라고 미국은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방어용 무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철수시켰다. 이런 이유로 6.25 전쟁 발발 초기에 변변한 무기를 갖추지 못했다. 만약 에치슨 라인에서 한반도 남쪽을 포함했으면 이승만 정부는 북진을 했을 것이라고 에치슨은 훗날 주장했다. 에치슨 라인 선언은 라인 밖의 비공산국가가 공산군의 침공을 받았을 경우 미국이 직접 개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을 통해 참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직접 참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을 한 것이다. 또한 에치슨 라인을 선언한 이유는 우리나라 원조 관련한 미국 의회의 법안 통과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의회 입장에서 서구유럽의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Korea라는 신생국을 위해 직접적으로 군대 파견을 하는 대규모 자금 투입을 하는 대신 원조를 하는 것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에치슨 라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국 에치슨 라인은 북한에게 사기 진작의 명분과 침공의 명분을 제공했다는 비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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