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틀 앞두고
인재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원이 80명인 한 차량에 무려 200명의 표를 팔았다. 여기에 8량의 기차를 18량으로 늘렸다. 즉, 3천장의 표가 발매된 것이다. 여기에 무임승차까지 더해지면서 사고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개찰은 발차 35분 전에 시작해야 하지만 사고 당일에는 5분 남기고 시작했다. 당시 승차권은 좌석번호가 기재돼 있지 않기 때문에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였다. 즉, 먼저 착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승객들이 한꺼번에 몰리게 되면서 압사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사고 즈음에 서울에 눈이 내렸고, 최저기온은 -12.2℃까지 떨어지는 강력한 한파가 닥쳤다. 잦은 눈고 추운 날씨로 계단 곳곳은 빙판이 되면서 희생자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이후에도 잦은 압사사고가 발생
우리나라 압사사고는 1959년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1974년 9월 28일 추석 연휴 용산역에서도 압사사고가 발생해 4명이 사망하고 46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2022년 이태원 참사야 말로 끔찍한 압사사고라는 기록이 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