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이란
사도광산이란 일본 최대 금광이었다. 이런 이유로 에도막부 시대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금고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도광산은 임진왜란 당시 은을 네덜란드 상인들에게 팔아서 조총을 얻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 침략을 했기도 했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고,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 황금의 나라로 인식이 되면서 JAPAN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됐다. 그만큼 사도광산은 그야말로 일본 특히 에도막부의 경제를 지탱해온 광산이었다. 그러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에도 막부가 무너지면서 미츠비시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다.강제노역 흔적들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구리·철 등이 사도광산에서 채굴되면서 조선인들이 많이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해야 했다. 현재 파악된 인원만 최소 1천141명이다. 이는 공식문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법무성의 지역 사무소인 니가타지방법무국 공문서에 ‘사도 광산에서 일한 조선인 1141명에게 미지급된 임금 23만1059엔59전이 공탁됐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탁 날짜는 1949년 2월 25일이었다. 다만 개별 노동자의 이름, 지급 액수 등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이 공문서를 통해 1천141명의 조선인이 강제 징용됐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이밖에도 강제동원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들이 남아있다.모르쇠로 일관한 일본 정부
하지만 일본 정부는 1858년 시효가 지났다면서 국고로 환수했다. 이후 2018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후보로 선발하려고 했지만 보류됐다. 하지만 니가타현과 사도시가 계속 추진했고, 결국 2021년 12월 28일 일본 문화심의회가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했다. 2020년 6월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아 유네스코의 경고까지 받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크게 반발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1월 28일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천을 결정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이 반발하면서 일단 보류된 상태였지만 결국 이번에 다시 추천한 것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