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 궁궐 건축에 사용된 소나무
인제 한계리, 영월 두산리 등은 소나무 생산지였고, 이것을 뗏목으로 묶어 한양으로 운반을 했다. 수량이 적은 상류에서 폭과 길이가 작은 소형 뗏목을 만들었고, 수량이 풍부해지면 대형 뗏목으로 만들어 운반을 하면서 대략 보름 정도 걸렸다. 한양에서 나무가 필요했던 것은 궁궐 건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겨울철이 되면 땔감이 필요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땔감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강원도에서 땔감을 만들어 한양으로 운송을 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뗏목을 이용해서 강원도에서 한양으로 땔감이나 건축자재를 운송해왔다.대원군 시절 경복궁 중건으로
1867년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 중건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당백전 등을 발행했다. 다른 화폐의 100배 값어치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실제로는 다른 화폐인 상평통보의 8배 정도 가치였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발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목재 수요가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당시 온돌이 보급되면서 땔감의 수요도 급등하면서 목재 가격이 급등하게 됐다. 뗏목을 모는 떼꾼들 입장에서는 강원도에서 목재를 실어 한양으로 운송해주면 당백전을 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떼돈을 버는 셈’이다. 당시 이들이 한번 소나무를 운반하면 쌀 25말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지방 관리 녹봉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였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