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3월 6일 고종 태극기 선포
[역사속 오늘리뷰] 3월 6일 고종 태극기 선포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3.06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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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이응준이 고안한 이른바 '이응준 태극기'
역관 이응준이 고안한 이른바 '이응준 태극기'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요청을 고종이 수락하면서 태극기가 조선의 국기로서 정식 공포된 날이다. 태극 문양은 고대부터 사용되던 문양인데 정식으로 국기로 채택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태극기가 출현을 했지만 고종이 정식으로 태극기를 국기로 인정한 날이기도 하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서 최초 사용

태극기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인식에서 역관 이응준이 최초로 사용했다. 원래 조선은 ‘국기(國旗)’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국기 제정 문제는 계속 논의됐지만 도안은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배마다 반드시 국기를 달아야 하는데 국기가 없었다. 이에 1882년 5월 14일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에 통리기무아문의 김홍집이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했다. 이응준 태극기는 현재 태극기와 다소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고종이 직접 태극기 제작에 관여한 구체적인 기록도 나와 있는데 박영효의 일기에서 고종운 군주를 상징하는 붉은 색, 신하를 상징하는 파란색, 백성을 상징하는 흰색 등의 색 배치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장기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주변에 조선 8도를 상징하는 팔괘를 추가하자는 김홍집의 제안이 있었지만 영국인 선장이 8괘면 너무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4괘로 단순화하자는 제안을 했고, 도안이 확정됐다. 태극 문양을 사용한 이유는 고대국가 때부터 사용해왔던 문양이 바로 태극 문양이기 Eoanns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태극기 공포

박영효는 1882년 9월 25일 일본 3차 수신사로 파견됐고, 일본 기선인 메이지마루호를 타고 건거가면서 공식 국기로 태극기를 사용했다. 박용효 일행은 일본에 도착하자 숙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883년 3월 6일(양력)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요청을 고종이 받아들여 태극기를 조선의 국기로 정식 공포했다. 그리고 1897년 독립문에 태극기를 새기고, 대한제국에서 태극기가 공식 국기로 되면서 오늘날 태극기로 이어졌다.

정통성의 상징으로

태극기는 이후 독립운동의 상징이 됐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상징이 됐고, 산업화의 상징에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청산리 전투 등 일제에 항거하는 전투에서도 ‘태극기’는 항상 앞에 있었고,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거리고 뛰어나왔다. 이때 태극기를 어떻게 그릴 줄 몰라서 일장기에 검은 칠을 해서 태극 문양을 만들고, 4괘도 대충 그려 넣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9.28 서울 수복 당시에도 중앙청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서울 수복을 했다는 것을 만방에 알렸다.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 상의 탈의한 남성이 태극기를 두르고 다니는 것은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태극기는 조선-대한제국-임시정부-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정통성과 한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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