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에서는
여성의 날은 1975년 지정됐지만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노동자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삶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비참했다. 그 이유는 기존 여성의 지위는 가사 노동에만 전담하는 수준이었는데 자본주의 체제로 들어서면서 노동자 계급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졌다. 여성은 가정에서는 ‘가사노동’을, 밖에서는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노동자에 비해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아야 했고, 인권은 말할 것도 못됐다. 이런 환경에 대한 불만이 드디어 폭발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1875년 미국 뉴욕시에서이다. 방직,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항의를 하면서 시위를 벌였고, 1859년 3월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1908년 열악한 환경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 노동자들을 기리면서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해서 1909년 2월 28일 ‘전국 여성의 날’이 선포됐다. 그러자 유럽에서는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이 여성 권리 신장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의 날’을 제안했다. 이듬해인 1910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됐다.러시아 혁명 이후
1912년 5월 뉴욕에서는 1만 5천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주장하면서 시위를 벌였고, 1913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맞이하면서 급격히 쇠퇴를 했지만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해 3월 8일 여성 노동자들이 제정러시아를 타도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이후 10월 혁명에서 여성들의 평등권 신장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1927년 소련은 스탈린 체제로 전환되면서 세계 여성의 날도 과거와 같은 영화를 누리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세계 여성의 날을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유엔에서 여성의 날을 지정하게 됐다.짓밟혀 왔던 한국 여성 인권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는 1920년대부터 있어왔다. 자유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은 각자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조선총독부는 이에 대해 명분이 없어서 탄압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방을 맞이하면서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여성 권리를 탄압했다. 이는 단순히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의 문제도 있었지만 노동집약적 경공업 육성이라는 과제 앞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해 여성 인권을 탄압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공을 ‘공순이’라고 부르는 등 여성 인권이 상당히 짓밟혔다. 1985년에 들어와서야 세계 여성의 날을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고,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됐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각종 여성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의 여정이 시작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