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으로서는 전쟁을 감당해야 했다. 중국 대륙을 상대로 한 전쟁이기 때문에 군사 등 인력은 물론 물자도 많이 소비가 돼야 했다. 당초 일본은 자국민 위주로 군대를 꾸렸지만 넓은 땅덩어리를 모두 차지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제로 1937년 50만명이었던 병력이 1939년 86만명으로 급증했다. 일본 인구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병력 충당을 해야 했다. 병력만 충당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물자도 충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일본 본토에서의 물자 충당만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징용을 해야 했다.초반에는 일본 기업에게 징용권한
초반에는 일본 기업에게 징용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에 기업의 사원이 조선땅을 돌아다니면서 면사무소, 주재소, 경찰 등을 동원해서 강제징용 대상자를 모집했다. 면장, 면서기, 순사 등이 찾아가서 강제징용에 응하지 않으면 폭행을 가하거나 배급을 끊는 등의 방식을 동원해서 강제징용을 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강제징용 방식은 더욱 가혹해졌다. 하루에 17시간씩 일을 시켰고, 휴일도 없었고, 그만둘 수 없었다.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강제징용
강제징용하면 ‘일본기업’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국내 기업 중에서도 몇몇개 있다. 그 중에서는 현재 존속하는 기업들도 있다.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가 일본 기업에만 국한돼 있기 때문에 현재 존속하는 기업들에 대한 배상 문제는 도외시된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도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마땅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현재 존속하는 기업들이 법인격의 연속성이 없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렵고, 배상시효 경과, 증거자료 부족 등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