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유럽 침공하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이 유럽 전역을 침공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무기고가 돼야 합니다”라면서 무기대여법을 주창했다. 무기대여법은 1941년 3월 11일 시작해서 1945년 9월 2일 종료됐다. 그 이전까지 최강대국이라고 하면 ‘대영제국’을 떠올렸지만 무기대여법이 통과되면서 세계인의 인식은 초강대국은 ‘미국’이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유럽의 상황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러시아 혁명을 거쳤지만 경제정책의 실패로 자금이 부족했다. 영국 역시 1차 대전에 엄청난 전비를 쏟아 부으면서 경제가 엉망이었다. 이런 이유로 전쟁을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일본군에 대항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일으킬만한 힘이 없었다. 결국 전장의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만이 경제성장을 이뤄내면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물자가 풍부해지고, 인구가 넉넉해지면서 점차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인의 인식에서 초강대국은 ‘대영제국’이었다.2차 세계대전 발발하자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은 독일군에 맥없이 무너졌다. 이대로 간다면 나치 독일이 전유럽을 석권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독일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문제는 ‘물자’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국 미국이 생각한 것은 무기대여법이다. 무기를 대여하고, 나중에 그 값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500억달러의 지원을 했다. 그 중에 60%는 영국이 차지했다. 영국은 지상 병기와 군함을 얻어갔다. 사실 무기대여법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국가를 꼽으라면 대영제국과 소련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은 109억 달러로 21%가량을 무기대여법으로 지원받앗다. 하지만 가장 이득을 얻은 국가는 소련이었다. 소련이 독일군을 맞이해서 수많은 군인들을 투입했지만 물자가 없었다면 독일군을 물리치지 못했을 것이고, 베를린을 점령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식량 지원을 받은 것이 가장 큰 수혜였다. 왜냐하면 식량 생산의 70%를 담당했던 우크라이나를 상실했기 때문에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이때 미국이 무기대여법으로 지원을 하면서 회심의 대규모 반격을 가하게 됐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전쟁 끝나자
무기대여법은 전쟁이 끝나면 손실되지 않는 지원품은 미국으로 돌려주기로 돼있었다. 지원품을 직접 돌려주거나 돈으로 환산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국가들은 상당량의 지원품을 계속 쓰기를 원했고, 미국 역시 지원품이 다시 미국 내부로 들어올 경우 오히려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해서 그대로 사용하게 만들었다. 결국 미국의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 경제를 생각하면 무기대여법은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잉여생산품’을 외국에서 처분을 하게 되면서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생산은 잉여생산의 시대로 들어갔는데 소비할 시장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소비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무기대여법으로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하면서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는데 성공을 했다. 더 이상 영국 화폐가 세계에서 사용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원국에서는 물품 대금으로 ‘첨단 기술’을 미국에 양도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독일에서 개발된 첨단 기술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미국의 산업을 더욱 성장시키게 만들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