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전황(錢荒)
[역사속 경제리뷰] 전황(錢荒)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3.27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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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전황(錢荒)은 동전의 씨가 마르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조선시대 때 동전의 씨가 마른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초기는 시장경제가 발달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점차 시장이 넓어지면서 그에 따라 화폐경제도 어느 정도 정착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화폐 유통에 대해 크게 익숙하지 않으면서 그에 따라 시장에 돈의 씨가 마르게 됐다.

임진왜란 이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들어오면서 화폐 유통을 시키려고 했지만 조선 백성들은 화폐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쉽지 않았다. 그런데 명나라나 일본(왜)에서도 점차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화폐 유통이 점차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화폐 유통에 대한 개념이 백성들 사이에 점차 정착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조선 조정 역시 새 화폐 주조 논의에 불을 당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대동법을 시행시킨 김육은 화폐 사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인물이었다. 그러면서 인조 3년 동전 60만개를 주조했지만 전황을 겪은 상황 속에서 정묘호란을 맞았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인조는 화폐 유통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또 다시 병자호란을 맞으면서 화폐 주조가 중단됐다. 효종이 즉위하면서 화폐 유통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 전개됐다. 그 이유는 효종이나 현종 시기에는 경신대기근이 닥쳤고, 사대부들까지 죽음에 이를 정도였다. 또한 화폐론자 김육의 장남 김좌명이도 사망을 하면서 묻혀졌다. 그러다가 숙종 4년(1678년) 상평통보가 본격적으로 주조됐다. 하지만 초기 유통에서 조선 조정은 화폐 운용의 미숙이 드러났고, 을병대기근으로 구휴을 위한 재정이 긴박해지자 정부는 지나치게 화폐 주조를 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에 동전 주조가 중단됐고, 이것이 33년간 이어졌다. 동전 주조가 중단되면서 시장에서 돈의 씨가 말라버렸다. 1931년이 돼서야 동전 주조가 다시 시작되면서 동전이 점차 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전황이 이어졌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구리 수출을 제한하면서 구리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당백전./사진=연합뉴스
당백전./사진=연합뉴스

당백전으로 경제 폭망

그러다가 대원군 집권 시절이 되면서 당백전이 나타났다. 대원군 정부는 경복궁 중건 등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당백전을 발행했다. 액면가를 1개 당 상평통보 100개로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시장 경제를 혼란에 빠지게 했으며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발생하게 했고, 조선 경제를 망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구한말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일본 경제에 먹혀들어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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