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4월 3일 제주4.3사건 발생
[역사속 오늘리뷰] 4월 3일 제주4.3사건 발생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4.03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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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왼쪽 두 번째)가 2022년 07월 20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방문, 제주4·3사건희생자영위에 참관한 뒤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왼쪽 두 번째)가 2022년 07월 20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방문, 제주4·3사건희생자영위에 참관한 뒤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8년 4월 3일은 제주4.3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4.3사건은 사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일어난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이날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하면서 4.3 사건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경찰의 3.1절 발포사건을 발단으로 남조선로동당 측의 반란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의 과잉 진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희생당한 사건이다.
해당 사건에는 남로당의 개입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까지 희생되면서 미군정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서북청년단의 백색테러 묵인한 미군정

일본이 패망하면서 남로당은 계속해서 반란을 했고, 이 과정에서 국군·경찰과 잦은 충돌이 있었다. 남로당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활동을 묵인했다. 그러다보니 전국 곳곳에서 남로당과 서북청년단의 충돌은 불가피해고, 그것이 제주도에서도 고스란히 전개됐다. 특히 남로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무장대를 조직하고 제주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서북청년단이란

서북청년단은 한반도 서북지역 즉 평안도에서 살다가 월남한 사람들로 구성된 청년단체를 말한다. 이들은 북한에서는 기독교인들이었는데 김일성 괴뢰세력이 이북 지역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재산을 몰수하자 월남을 하게 됐고, 1946년 11월 30일 서울 YMCA에서 창단했다. 문제는 이들이 빈털터리로 월남했다는 점이다. 특히 가족들이 전부 살해당하거나 재산을 몰수 당한 상태에서 혼자 월남을 하다보니 ‘공산주의자’들은 그야말로 ‘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승만과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원을 군대와 경찰에 대규모로 집어넣었다. 그들의 폭력성과 잔학성은 남로당 세력을 일망타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4.3사건의 주도 세력은 서청

4.3사건의 주도 세력은 서청이다. 그들은 ‘빨치산’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민간인들에 대해 사적 제재를 가했다. 그들은 마을로 진입하면 민간인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다. 아무래도 빈털터리로 월남했던 그들이기 때문에 민간인들의 재산은 곧 자신의 재산이라고 판단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경쟁이나 평소 악감정을 가졌던 제주도민들끼리도 서청에게 “저 사람이 빨갱이”라고 지목한 경우가 있었다. 이에 서청이 사적 제재를 가하면 곧바로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서청 단원과 결혼하기도

또한 피해 당한 여성들이 서청 단원들과 억지로 결혼을 한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피해 당한 여성의 집안이 잘 사는 집안일 경우 더 극심했다. 서청단원들이 빈털터리로 월남을 했기 때문에 재산을 손에 넣기 위해 부잣집에 속해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여성과 억지로 결혼해서 재산을 갈취하는 경우였다. 피해 여성들은 서청단원에 의해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평생 원수와 한 이불을 덮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리고 제주도에 정착한 서청단원들은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으면서 정부의 보훈대상이 되기도 했다. 다만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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