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보이스피싱
보이스피싱은 최근에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1920년대에도 기승을 부렸고, 이에 신문에도 보도가 될 정도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28년 4월 19일자 조선일보 보도이다. 당시 종로 어느 금은방에 전화벨이 울렸는데 수화기 속 사내는 “대비(大妃) 전하께서 금비녀·금반지 등을 급히 구입하려 하시니 창덕궁으로 가져오라”는 내용이었다. 궁궐에서 그것도 대비 전하가 사용한다고 하니 당연히 상인이 놀라서 허둥지둥 준비한 후 창덕궁 금호문(金虎門)으로 달려갔다. 양복을 입은 청년이 “이렇게 늦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통을 쳤고, 청년은 상인이 갖고 온 거액의 귀금속을 모두 건네 받았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이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야말로 보이스피싱이었다. 1927년에는 송금 요구 사기도 보도됐다. 황해도 어느 실업가 동생에게 형을 사칭한 전화가 왔는데 물건 대금 8천원을 전신환으로 입금해달라는 요구였다. 실업가 동생은 당연히 형인줄 알고 거금 8천원을 은행에 전신환으로 입금했다. 범인은 은행에 전화를 걸어 형인척 연기를 했고, “내 동생이 대신 돈 찾으러 간다”고 연락한 후 돈을 무사히 출금해서 사라졌다. 1928년 10월 19일에는 인천 포목점에 양화점 주인으로 사칭해서 점원을 보낼테니 옥양목 한 필만 보내라고 연락한 후 물건을 가로챘다. 하지만 이 경우 범인이 잡혔는데 겨우 20세 청년이었고, 거액 100여원을 전화 사기를 통해 챙겨서 유흥비로 탕진했다는 것이다. 당시 전화 사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전화 통화 품질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통의 목소리와 전화 상의 목소리가 달랐기 때문에 쉽게 사기에 걸려들었다고 한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