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토크 계획으로
1960년 유리 가가린은 19명과 함께 보스토크 계획을 위한 소련인 우주인 선발 프로그램을 거쳐 인류 최초 우주인이 됐다.그리고 알렉세이 레오노프, 게르만 티토프, 유리 가가린 등이 후보로 올랐고, 가가린이 기량 및 능력이 출중하고, 출신 성분이 평민 출신 노동자 집안이기 때문에 홍보하기 안성맞춤이었기에 최종 선발됐다. 무엇보다 보스토크 1호 캡슐에 들어갈 우주비행사 조건이 72kg를 넘겨서는 안되고, 키 170cm를 넘겨서는 안됐는데, 157cm이기에 최적이었다. 유리 가가린은 우주비행을 하면서 “우주는 매우 어두웠으나, 지구는 푸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분통 터뜨린 미국
가가린의 우주비행 소식이 전세계에 타전되면서 미국 국회의원은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대서양을 2번째로 횡단한 사나이의 이름을 누가 안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즉,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 이름은 자손만대에 남지만 두 번째 우주비행을 한 사람의 이름은 남겨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미국이 유인 우주비행을 추진하려고 해도 이미 소련에게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아폴로 계획이다. 사실 현재도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경제적 비용이 상당히 들어가는 계획이다. 이런 이유로 한 국가에서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동참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서 아폴로 계획을 발표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계획이지만 이미 자존심 구긴 미국 국민으로서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더라도 달에 미국인이 착륙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미소 경쟁 체제가 결국 달 탐사 계획을 촉진시키게 만들었다.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기점으로 여러번 달에 인류를 보냈지만 미소 경쟁이 점차 약화되면서 경제적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아폴로 계획에 대해 미국 국민의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결국 철회하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