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두적각
우리나라에서 과거 노비를 가리키는 말이 ‘창두적각(蒼頭光脚)’이 있다. 푸른 머리에 붉은 다리라는 뜻이다. 조선말기까지 사내종(奴)는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고, 계집종(卑)은 종아리를 드러내야 했다. 이런 이유로 노비를 ‘창두적각’이라고 불렀다. 사내종은 머리를 짧게 깎고, 계집종은 치마를 짧게 입어야 하는 이유는 긴 머리와 긴 치마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복색 연구가들은 계집종이 입은 치마의 길이가 거의 미니스커트와 비슷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평민 이상의 여성들은 긴치마를 입었지만 천민들은 주로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속바지가 드러났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성종 때 조선땅을 밟은 명나라 사신 동월이 쓴 ‘조선부’라는 책에는 조선의 천한 여성들은 종아리를 치마로 가리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삼국시대부터 짧은 치마를
우리나라는 북방계 기마민족이 입던 옷인 호복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바지가 있었고, 풍성한 치마에 속바지를 입은 형태였다. 다만 평민 이상은 긴치마를 입었고, 길이는 발목을 넘어 길게 내려왔다. 하지만 신분이 낮은 여성은 치마를 입었지만 바지가 보일 정도였다. 그것은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미니스커트’라고 할 수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