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미니스커트 그리고 창두적각(蒼頭赤脚)
[오늘 통한 과거리뷰] 미니스커트 그리고 창두적각(蒼頭赤脚)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4.14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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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미니스커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메리 퀀트가 93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13일(현지시각) 영국 BBC 등에 따르면, 퀀트가 서리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퀀트는 1960년대 ‘스윙잉 식스티즈’(활기찬 60년대·Swinging sisxties)를 정의한 미니스커트를 대중화한 인물로 꼽힌다. 모델 출신 트위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퀀트는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젊은 소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창두적각

우리나라에서 과거 노비를 가리키는 말이 ‘창두적각(蒼頭打赤脚)’이 있다. 푸른 머리에 붉은 다리라는 뜻이다. 조선말기까지 사내종(奴)는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고, 계집종(卑)은 종아리를 드러내야 했다. 이런 이유로 노비를 ‘창두적각’이라고 불렀다. 사내종은 머리를 짧게 깎고, 계집종은 치마를 짧게 입어야 하는 이유는 긴 머리와 긴 치마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복색 연구가들은 계집종이 입은 치마의 길이가 거의 미니스커트와 비슷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평민 이상의 여성들은 긴치마를 입었지만 천민들은 주로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속바지가 드러났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성종 때 조선땅을 밟은 명나라 사신 동월이 쓴 ‘조선부’라는 책에는 조선의 천한 여성들은 종아리를 치마로 가리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삼국시대부터 짧은 치마를

우리나라는 북방계 기마민족이 입던 옷인 호복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바지가 있었고, 풍성한 치마에 속바지를 입은 형태였다. 다만 평민 이상은 긴치마를 입었고, 길이는 발목을 넘어 길게 내려왔다. 하지만 신분이 낮은 여성은 치마를 입었지만 바지가 보일 정도였다. 그것은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미니스커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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