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단위 쥐 잡기 운동 전개
우리나라가 쥐 잡기 운동에 나선 것은 쥐가 먹어 치우는 곡물의 분량 때문이다. 농림부가 추산한 우리나라의 쥐는 9천만리 정도인데 한해 약 240만섬(당시 금액으로 대략 240억원어치)의 분량을 먹어치웠다. 이는 당시 곡물 총생산량의 8%에 육박했다. 가뜩이나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 쥐가 곡물생산량 8%를 먹어치우는 것이기 때문에 쥐 잡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깔리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쥐 잡기 운동이 전국단위로 처음 실시된 때는 1970년 1월 26일이었다. 농림부는 예산 1억 4천만원을 들여 전국 540만 가구에 20g의 쥐약을 무료로 배포했다. 그리고 정부는 쥐꼬리를 가져온 학생이나 직장인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쥐꼬리 하나 당 연필 한 자루 혹은 복권 한 장을 줬다. 그렇게 해서 1차 쥐 잡기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그해 5월 15일 2차를 실시했다. 그리고 1971년 3월 15일 3차 전국 쥐잡기를 실시했다. 1972년은 쥐띠해임에도 불구하고 쥐잡기 운동이 열기를 더해지면서 쥐잡기 포스터 공모대회와 쥐 박멸 웅변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쥐 잡기는 농촌에서는 엄청난 참여도가 있었지만 서울 등 도심에서는 참여도가 낮았다. 그 이유는 음식점이나 유흥가 등에서는 쥐약을 놓는 것을 꺼리게 됐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애완용 가축이 잘못 먹고 죽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쥐약 놓기를 기피했다.1990년대 들어서서
이런 전국 단위 쥐 잡기 운동은 1980년대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쥐꼬리 검사 등은 사라졌고, 1년에 2번 연중행사로 치러졌다. 그런 것이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 차원에서 쥐잡기 운동이 사라졌다. 급격한 도시화가 아이러니하게도 쥐 개체수의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곡을 제대로 된 시설에서 철저하게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화로 인해 상하수도 관리를 지자체가 철저하게 하면서 쥐의 개체수가 감소했다. 하지만 아직도 쥐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