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춘향
“수청을 들라”는 말은 춘향전에서 변사또가 춘향이에게 한 말이다. 이 말에서 파생된 말이 ‘억지춘향’이라고 부른다. 수청은 높은 벼슬아치 밑에서 심부름을 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춘향전으로 인해 ‘성적 의미’로 확대됐다. 여기에 파생돼서 ‘원치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뜻으로 ‘억지춘향’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억지춘향’과 ‘억지춘양’이 있다. 이는 억지춘향이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 ’억지춘양‘이라는 속요가 전해지면서 ’억지춘양‘이 파생됐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소나무 춘양목에서부터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잇다. 마지막으로 1944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북 영주와 춘양을 연결하는 영춘선(현 영동선) 철도 공사를 시작했고, 1945년 8월 현 봉화역인 내성역이 개통됐지만 경북 일대 홍수로 인해 운행도 해보지 못하고 유실됐다. 1949년 이미 개통된 영주~봉화 구간을 복구하여 열차 운행을 재개하고 다시 철암까지 연결하는 철도 공사가 재개되었으나 얼마 안가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건설은 중단됐고, 휴전 이후인 1954년이 돼서야 간신히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 그런데 3대 국회의원이면서 자유당 원내총무였던 정문흠이 갑자기 영암선 철도가 춘양면을 지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교통부 철도국에 압력을 넣어 철도를 춘양면 소재지로 돌아가게 하게 하면서 철도를 억지로 춘양으로 돌렸다고 해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