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 전후로
넥타이의 유래에 대해서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도 잇다. 로마 병사들이 포칼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양모를 목에 감았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30년 전쟁 전후로 넥타이가 등장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중부 유럽에서 발생한 전쟁이면서 근대의 문을 연 종교 전쟁이자 서양 최초 국제 전쟁이다. 당시 프랑스 왕실의 용병으로 고용됐던 크로아티아 기병대가 목에 붉은 천을 매고 다녔다. 그것은 무사귀환을 빌면서 붉은 천을 매어주는 것이 크로아티아의 오래된 풍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크로아티아 기병대가 다른 부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으로 붉은 천을 목에 매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를 흘리는 부상자를 치료하는 수단으로 붉은 천을 이용하기 위해 붉은 천을 목에 매고 다닌 것이다. 붉은 천을 맨 크로아티아 기병대를 일컬어 ‘크르바타(Hrvata 혹은 Hrvat)’라고 불렀고, 크라바트(Cravat)가 된 것이다.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난 후 파리에서 개선 퍼레이드가 있었는데 루이 14세가 크로아티아 기병대의 붉은 천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고, 붉은 천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들은 크로아티아 기병대를 물어보는 것으로 착각해서 크라바트(Cravat)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넥타이를 ‘크라바트’라고 프랑스에서 부르게 된 것이다.루이14세는 왕권 강화의 상징으로
루이14세는 그 이후 목에 희고 긴 레이스를 달린 천을 매고 다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착용을 하도록 권장하면서 왕실 행사에 참석할 때 필수복장이 됐다. 그 이후 각종 전쟁에서도 타이를 매게 되면서 그때부터 넥타이를 매는 것이 일상화되기 시작했고, 양복을 입을 때 넥타이를 매는 것이 일종의 예의차림이 됐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 사회에서 젠틀리 계층이 급성장하면서 그에 따라 넥타이를 매는 것이 신사의 품격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넥타이를 매고 업무를 보는 것 자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넥타이 수요가 급속도로 위축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넥타이를 만드는 회사가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