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고구려 청야전술
[역사속 경제리뷰] 고구려 청야전술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5.03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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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한 장면.
영화 안시성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구려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청야전술을 택했다. 청야전술은 들판의 곡식들을 치우고, 들판을 불태워서 외적들이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게 하는 전술을 말한다. 청야전술이 처음으로 기록된 전투는 좌원 전투였다. 고구려 신대왕 8년 즉 172년 한나라의 침입에 맞서 명립답부의 지휘 아래 고구려가 대승을 거둔 전투였다. 이때 청야전술이 처음으로 나온다. 이후 고구려는 청야전술을 기본 전술로 삼았고, 중국의 여러 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수나라는 여러 차례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실패를 했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걸어야 했다.

성문 걸어 잠그고

고구려 전투의 기본 전술은 청야전술로 들판을 불태우고 성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그것은 수십만 대군을 맞이하는 소규모 군대가 쓸 수 있는 최상의 효율적인 전투이다. 만주지역은 기본적으로 음력 10월만 돼도 기온이 급격히 하강을 한다. 전투를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전투를 함으로써 수십만 대군의 피로도를 급격히 올리는 것은 물론 외적의 후방을 기습 공격하는 게릴라 작전으로 수송부대를 끊어버린다면 수십만 대군은 굶어죽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중국에는 수많은 나라가 출몰했고, 그 나라들마다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 평양성 한 장면.
영화 평양성 한 장면.

백제의 멸망, 전쟁의 양상은 달라져

문제는 백제의 멸망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다. 그것은 신라가 당나라의 보급부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쟁은 중국 본토에서 식량을 구해서 보급부대를 통해 식량을 보급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고 고구려군의 기습 작전에 휘말려 보급품이 제대로 보급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무엇보다 전쟁 비용 부담의 증가는 중국 내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신라가 개입하면서 전쟁 양상은 달라졌다. 당나라 입장에서 자신들이 보급품을 구해서 보낼 이유가 사라졌다. 신라가 보급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고구려와 대규모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고구려가 청야전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평양성만 에워싸고 마치 쳐들어갈 것 같은 모습만 보여도 고구려는 그야말로 경제적 소진을 할 수밖에 없다. 당나라 군대가 쳐들어 올 때마다 들판을 불태울 수밖에 없으니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서 고구려 백성들은 식량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반면 당나라는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군사의 희생이 크지 않다. 또한 신라가 보급품을 공급하기 때문에 물자의 소비도 크게 이뤄지지 않은 편이다. 경제적 비용을 볼 때 당나라는 크게 비용 부담을 느끼지 않는 전쟁이 된 반면 고구려는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 비용 부담이 커지는 전쟁이 된 것이다. 물론 연개소문 사후 연개소문의 아들들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나라가 분열을 일으킨 측면도 있지만 경제적 비용 부담이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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