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19년 5월 4일은 5.4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중국 반제국주의 민중운동을 일컫는다. 해당 운동으로 인해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창설됐다는 점을 볼 때 중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은 혼란에 빠졌다. 정치적으로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전파됐고, 한반도에서 3.1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중국의 주요 언론을 통해 전파가 되면서 중국 국민들은 “우리도 무기력하게 있을 수 없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전파되면서 중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자”는 사고가 퍼져 나갔다.
파리강화회의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이 승리를 하면서 중국은 칭다오를 반환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본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을 하면서 연합국은 칭다오의 권리를 일본이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에 파리강화회의에서는 칭다오의 권리를 일본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중국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에 베이징대학 학생들은 5월 7일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자 정부는 시위를 단속하려고 했고, 이에 5월 4일로 사흘 앞당기게 됐다.
베이징대학 학생들은 “중국은 망하려 한다. 동포여, 일어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가 학생들로 구성돼 있었지만 점차 베이징 시민들이 합류를 하면서 시위대 양상이 달라졌고, 점차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시위대를 계속 해산시키려고 했지만 5.4운동이 상하이에도 알려지게 됐고, 그러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2주만에 베이징은 물론 난징, 톈진, 상하이, 우한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진행됐다.
국민당과 공산당 창설
5.4 운동은 신문화운동으로 전개되면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창설됐다. 그리고 이후 중국 각지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1922년 홍콩 선원 파업을 시작으로 노동운동 고조기를 맞이하지만 1923년 2.7 사건으로 경한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잔혹하게 진압되고 노동운동 조직들이 해산되면서 고조기가 끝났다.
중국의 역사를 근대와 현대로 구분할 때 5.4운동을 기점으로 한다. 즉, 5.4 운동 이전을 근대, 5.4 운동 이후를 현대라고 구분하고, 중국 문학 역시 5.4 운동을 기점으로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으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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