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었던 일본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낸다. 하지만 1930년대 초반 불어닥친 세계대공황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기업이 줄도산하게 됐다. 이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1931년 일본 육군 광동군 일부가 만주사변을 일으켰지만 일본 정부는 더욱 혼란스런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여기에 1930년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 해군은 그야말로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됐다. 이로 인해 일본 총리 등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기회를 노리게 된다. 1932년 2월 와카쓰키의 입헌민정당(立憲民政党)이 패배하고 입헌정우회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누카이 쓰요시가 내각총리대신이 된다. 이누카이 쓰요시는 만주사변을 묵인하는 등 전형적인 제국주의자였지만 일본 해군 장교들은 일본 정부가 해군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이누카이 신임 총리를 암살하기로 결정한다.주동자 군법회의로
5.15 사건은 쿠데타라기보다는 오히려 테러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누카이 신임 총리가 저격되고, 주동자들은 붙잡혔다. 그리고 해군 군법회의에서 해군장교를 처리하기로 했다. 이들은 가담 정도에 따라 유기징역, 집행유예, 훈방조치를 받았다. 사형이 아닌 형이 경감된 이유는 정당정치의 부패에 염증을 느꼈던 일본 국민들이 반란장교들을 구명하려는 탄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탄원서명만 35만명이었을 정도였다. 이는 군국주의가 일본 국민들에게 오히려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군인들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성공 여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5.15 사건을 계기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실제로 5.15 주동자들이 2.26 사건을 일으키는 육군장교들에게 거사에 동참할 것을 강권했다. 다만 육군은 이때 가담하지 않았다가 훗날 2.26 사건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일본 제국을 군국주의화하게 했고,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