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도 기록된 지진
지진은 고대인 삼국시대부터 기록이 돼있다. 신라의 경우 유리 이사금 11년 6월 땅이 갈라지다는 기록이 돼있다. 탈해 이사금 8년 12월 지진이 일어나고 눈이 내리지 않았고, 파사 이사금 14년 10월 지진이 발생했다. 고구려의 경우 유리왕 21년 8월 지진이 발생했고, 대무신왕 2년 1월 지진이 일어나 사면했고, 태조대왕 66년 2월 지진이 발생했으며, 차대왕 2년 11월 지진이 발생했다. 백제는 온조왕 45년 10월 지진이 일어나 백성의 가옥이 손상됐다. 이처럼 삼국시대에도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인 혜공왕 15년(779년) 3월에 경도(경주)에 지진이 나서, 백성들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100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지진이 150회 발생했으며 1311년 고려 왕궁이 지진 피해를 입었다.조선시대 더욱 상세히
조선시대가 되면서 지진에 대한 기록이 더욱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대략 1500건 정도가 기록돼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종 13년(1518년) 5월 15일 기사다. “유시(酉時)에 세 차례 크게 지진(洪水)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가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城堞)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팔도(八道)가 다 마찬가지였다”는 기록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진 규모가 7.0으로 추정하고 있다. 쓰나미에 대한 기록은 숙종 7년(1681) 5월11일 기사다. “강원도(江原道)에서 지진(震灾)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와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襄陽)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중략) 부(府)의 동쪽 능파대(凌波臺) 수중(河中)의 10여 장(丈)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潮汛)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다”는 기록이다. 지진의 기록은 아니지만 쓰나미에 의한 피해의 기록도 있다 명종실록에 따르면 명종 12년(1557년) 4월 3일 기사에는 전라도 감사가 나주, 진도, 영암, 임피, 해남, 함평, 무장 등에 4월 3일 비바람이 크게 불고, 해일이 일어나 뚝방이 무너져서 짠물이 들어와 벼싹이 모두 말라 죽었으므로 매우 참혹하다는 기록이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