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집안
박모씨는 그야말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부모가 경동시장에서 대형 약재상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아무런 고민이 없는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공부에 관심이 없고, 유흥에 관심이 있었다. 부모는 박모씨를 통제하려고 했지만 통제가 되지 않았다. 박모씨는 성인이 된 후 이른바 오렌지족에 야타족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박모씨는 도박에 빠지게 됐다. 미국에서 유학 중에 도박과 향락에 빠지면서 도박으로 돈을 잃어버리고 빚까지 얻게 됐다. 이에 1994년 4월 부모 몰래 귀국해서 은행에서 발급받은 카드로 사채업자에게 현금을 빌린 후 오렌지족 생활을 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들키면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박모씨는 자신이 원하는 고급 승용차를 사주지 않고 자신의 빚도 안 갚고 호되게 꾸짖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앙심을 품게 됐고, 본격적인 살해 계획을 세우고, 5월 13일 세운상가와 호남정유 주유소 등지를 돌며 등산용 칼, 휘발유 등 살인에 필요한 도구들을 구입했다.단순 화재 사고로
범행 이후 증거 인멸을 위해 집에 불을 지르는 방화까지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박모씨 부모와 12살 사촌동생 이 모 군도 사망을 하게 됐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 화재 사고로 처리했으나 형식적으로 실시한 부검에서 칼에 찔린 흔적이 발견되면서 살인사건 수사로 전환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박모씨가 부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호사가 박모씨의 머리에 피가 묻어있었고 증언했고, 박모씨 다리에 잇자국이 있다는 제보로 인해 결국 박모씨를 추궁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반성의 기미 보이지 않아
경찰에 체포된 이후 수감생활을 했지만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지 인권변호사였던 황산성 변호사는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됐다. 당연히 1심과 2심 모두 사형 판결이 났으며 대법원에서도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사형수 신분으로 현재도 수감 중에 있다. 박모씨는 붙잡힐 당시 “미국 영화 장면을 보고 살인 수법을 배웠다”고 하면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회적 색안경이 짙게 드리워지게 했다. 그로 인해 당시 수입 예정이었던 많은 영화들이 심의 기준에 부딪히면서 반려되기도 했다. 결국 박모씨의 모습을 모티브로 해서 영화 ‘공공의 적’이 탄생하기도 했다. 물론 공공의 적 악역 조규환의 모티브가 박모씨이기도 하지만 영화 공공의 적은 당시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을 담아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