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6월 19일 필리핀 해전 발발
[역사속 오늘리뷰] 6월 19일 필리핀 해전 발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6.19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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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4년 6월 19일은 필리핀 해전 발발한 날이다. 이날 해전에서 일본의 해군이 사실상 와해됐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함대항 항공전이면서 일본 패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만든 해전이다. 일본은 이때부터 사실상 패색이 짙어졌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끈질기게 저항을 했고,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도시에 원폭을 떨어지자 항복을 하게 됐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공방전

1942년 미드웨이 해전 이후 미국과 일본의 해군력은 비등해졌다. 미드웨이 해전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해군력이 미군을 압도했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으로 미국은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이후 본토에서 압도적인 생산력을 바탕으로 항공모함과 군함을 찍어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과의 해전이 비등하게 이뤄졌다. 그 균형이 깨지게 된 것이 바로 필리핀 해전이다. 해당 전투에서 전투 양상은 완전히 달랐다. 미국 함상전투기는 미국 함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일본 함상 전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일본 함상 전투기가 조직적으로 요격을 당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전투였고, 이 전투에서 미군은 승리를 했지만 일본은 패하면서 태평양의 주도권을 미군에게 넘겨주게 됐다.  특히 일본군 조종사들의 기량은 형편없었다. 미군 전투기가 보이면 무조건 도망다니다가 격추 당하기 일쑤였다.

장비 운용 인력 능력 차이

여기에 장비 역시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것은 바로 일본 본토의 공업능력 때문이다. 레이더의 성능은 미국에 비하면 형편없이 열악했다. 그 이유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들이 침몰하면서 정비사 등등이 함께 수장됐기 때문이다. 항공 정비사 등 고급 인력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 항공모함들이 침몰되면서 항공모함에 있던 많은 항공 정비사들이 함께 수장되면서 일본군은 항공 정비사 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반면 미국은 진주만 공습 당시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항공 정비사 등등은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때문에 진주만 공습 당시 전함이 침몰되기는 했어도 항공 정비사 등의 희생이 최소화됐기 때문에 미국 본토에서 항공모함이나 전투기 등을 양산해도, 그에 따른 장비 운용 등이 가능했다.

필리핀 해전에서 일본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필리핀 해전에서 일본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본 본토에서 레이더 등 장비 생산 능력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해당 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도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다. 필리핀 해전은 일본 해군을 사실상 와해시킨 결정적 전투라는 평가다. 해당 전투 이후 일본은 항모를 재건시키려는 의지도 꺾이게 됐다. 이미 조선(船舶制造) 능력도 한계에 부딪혔을 뿐만 아니라 전투기 운용 능력이나 항모 운용 능력이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가미카제 특공대’였다. 어차피 ‘이렇게 해도 죽고 저렇게 해도 죽는다’는 인식이 깔리게 되면서 전투기를 몰고 미국 항공모함에 부딪히는 방식으로 전투를 치르게 한 것이다. 그야말로 미치광이 전투 방식으로 전환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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