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바그너 그룹의 푸틴 러시아 반란 그리고 안사의 난
[역사속 경제리뷰] 바그너 그룹의 푸틴 러시아 반란 그리고 안사의 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6.27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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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귀비 한 장면.
영화 양귀비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그룹이 지난 23일 러시아 정규군이 자신들을 향해 대규모 포격을 실시했다는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켰고, 하루만에 모스크바로부터 약 200km 거리까지 진격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주요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중재로 철수를 결정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면서 당나라 시대의 안사의 난이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많다. 안사의 난은 당나라 중엽인 755년부터 763년까지, 즉 당현종, 당숙종, 당대종까지 약 8년간 연속적으로 벌어진 대규모 군사반란을 의미한다. 안사의 난으로 당나라가 곧바로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당나라 멸망의 원인이 안사의 난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이다.
안사의 난의 원인 중 하나가 양귀비 세력과 안록산 절도사의 정치적 갈등도 있었지만 안사의 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배경도 있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판단이다.

균전제 기반의 조용조 체제

당나라는 토지분배를 한 균전제와 균전제를 기반으로 한 조세제도인 조용조 체제이다. 즉, 백성들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세 제도와 부역 그리고 군역도 담당하게 했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를 했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충성이 강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 부역을 짊어지게 하거나 군대 즉 군역을 짊어지게 해도 큰 불평이나 불만이 없었다. 더욱이 당나라 당시 농업생산력이 크게 향상하면서 조세나 군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다만 농업생산력이 크게 향상했다는 것은 그만큼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나눠줄 토지가 부족하게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백성들 개개인에 돌아갈 토지는 부족한데 부담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이에 당나라 백성들은 호구 등록을 기피하게 됐다. 당시 인구의 1/4 정도는 호구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백성들은 귀족의 사유지 및 사원전에 들어가게 됐다.

안사의 난 이후 변화한 조세제도

균전제에 따른 군역도 균전제가 붕괴되면서 군역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당시 고구려를 멸망했지만 뒤이어 발해가 건국됐고, 거란과 돌궐 등이 있었고, 서쪽으로는 토번이 강했다. 기존 군역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에 따라 여러 진들을 통합하는 번진이 등장하게 됐고, 이에 지휘하는 절도사가 등장하게 됐다. 안록산 절도사도 그런 식으로 해서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안사의 난을 겪으면서 조세제도의 변화도 겪을 수밖에 없다. 안사의 난 이후인 780년 재상 양염은 조용조를 포기하고 양세법을 시행하게 됐다. 양세법은 ‘나가는 것을 헤아려 들어오는 것을 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양출제입(量出制入)이라는 고사성어가 됐다. 양세법은 주거지역의 자산에 따라 조세를 걷고, 전납을 원칙으로 했으며, 여름과 가을에 두 번 세금을 징수했는데 그 대신 토지의 사유화를 선언하고 균전제를 폐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부여하는 부역과 군역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두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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