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전후 보여준 행적
어쩔 수 없는 선택
장도영은 훗날 계속해서 자신은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당시 윤보선 대통령이 아군끼리 피를 흘리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비록 주한미군과 이한림 제1야전군사령관이 쿠데타 진압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유보선 대통령은 유혈진압을 거부한 상황이었고, 정부 실권을 가진 장면 국무총리도 도망가서 연락이 되지 않은 상황이 되면서 장도영 역시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장도영이 비록 육군참모총장이었지만 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에게 있었기 때문에 장도영이 직접 운용할 수 있는 부대는 헌병대 일부와 30사단 내 1개 중대 정도였다. 즉, 장도영이 적극적으로 반란을 진압하려고 했다고 해도 쓸 수 있는 군대가 사실상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쿠데타 세력이 모인 6관구 사령부에 헌병까지 보냈지만 해산을 종용할 뿐 체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연 쿠테타를 막을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군사혁명위 의장에 이어
장도영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세력에 의해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부장관으로 추대됐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한 달 반만인 1961년 7월 2일 반혁명 혐의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에 의해 전격 체포됐고, 그 다음날 최고회의 의장직을 사임했다. 1962년 3월 10일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상 반혁명 행위죄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으나 1962년 5월 2일 형집행 면제로 풀려났고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1968년에 잠시 귀국해 박정희와 만났다고 전해진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