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과 사족이 실업가로 변신하며
일본은 19세기 개화기 당시 상인과 사족(士族)이 실업가고 변신하면서 재벌이 태동됐다. 초기에는 자본 형성과 서양 기술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정경유착의 면모가 컸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전 재벌을 살펴보면 ‘은행’과 ‘지주회사’ 중심이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재벌에게 은행 설립을 허용하고, 재벌은 은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재벌은 개화기 당시에는 우리나라 등 식민지를 만들어서 시장을 개척해 나갔고, 제1차 세계대전에 들어서면서 유럽을 상대로 소비재를 생산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식민지를 넓혀가는 방법으로 재벌의 성장을 이뤄냈다.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식민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재벌은 시장 개척의 걱정은 없었고, 무조건 ‘은행’을 통한 자본을 확보하고, 식민지 국민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부릴 수 있었다. 즉, 식민지 국민들의 저임금 노동력 착취를 통해 재벌은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이 계속 팽창을 하자 미국이 이를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석유를 일본에 공급하는 것을 차단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일본 패망 이후
그리고 일본이 패망을 하자 미군정은 재벌을 해체하고 농업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이는 미국이 종전 이후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경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재벌 해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해지면서 경제를 약제화하는 작업은 중단됐다. 이에 1955년 일본에 주권이 반환되면서 근거법이 폐지되고, 현대적 의미의 재벌이 탄생하게 됐다. 그것은 종합상사 중심의 재벌 구조가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은행을 끼고 움직이는 회사였다면 한국전쟁 이후 일본의 재벌은 ‘종합상사’ 중심의 계열사별 합종연횡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로의 이해관계로 뭉치게 됐다는 것이다.과거처럼 정부가 시장 개척 할 없자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재벌은 정부가 식민지를 개척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에 재벌이 굳이 시장을 개척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주로 자금줄인 은행을 거느리고 있는 지주회사 형태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부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재벌 스스로가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보니 재벌이 가장 주력했던 것은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종합상사’를 두는 것이었다. 종합상사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기업들이 연결고리를 형성하면서 ‘재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기업집단’의 형태가 강했다. 이를 호송단식 경제라고 부른다. 종합상사를 중심으로 기업 결합이 이뤄졌지만 언제든지 종합상사로부터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국시대’의 야합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이묘끼리 합종연횡을 하면서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지만 언제든지 내부적으로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일본 대기업에는 오너 가문이 있지만 보유한 지분이나 영향력이 매우 미미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너 가문이 보유한 지분이 미약하지만 그 영향력이 상당한 것과는 비교가 된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