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7월 4일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죽다
[역사속 오늘리뷰] 7월 4일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죽다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7.04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사도 한 장면.
영화 사도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영조 38년(1762년) 윤 5월 13일(양력 7월 3일)은 영조가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8일간 가둬 굶겨 죽인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이를 임오화변이라고 부른다. 뒤주에 들어가기 전에 폐세자가 됐기 때문에 사망할 당시에는 ‘세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 사람들은 ‘사도세자’라고 부른다. 즉 뒤주에 갇혀 죽은 세자라는 뜻이다. 자신의 유일한 후계자를 잔혹하게 죽음으로 몰아간 사례는 조선왕조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루스 차르국 이반 4세가 황태자 이반을 때려죽인 사례가 있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세손에게 물려주려면

영조가 더 이상 사도세자를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뒤주에 가둬서 죽게 했다. 만약 사약 등 다른 방법으로 사도세자를 죽였다면 세손(정조)의 정통성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영조가 처음에는 세자에게 자결을 종용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약은 죄인에게 내리는 공식적인 형벌이다. 이는 세자가 ‘죄인’이라는 뜻이 되고, 세손(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게 된다. 이미 연산군이라는 사례를 경험한 영조로서는 세자를 죽이는 방법으로 사약이 아닌 자결을 원했지만 사도세자가 자결을 하지 않자 결국 뒤주에 가둬 굶겨죽인 것이다.
영화 사도 한 장면.
영화 사도 한 장면.

성질이 달랐던 두 사람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은 결국 태생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사도세자는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무인 기질이 강했다. 반면 영조는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였다는 점에서 매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도세자가 만약 조선 초기에 태어났다면 부왕(父王)으로부터 총애를 받으면서 자라났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정치적 격변기를 겪었던 영조의 아들로 태어나면서 매사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사도세자는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됐다. 아버지인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가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을 요구했지만 사도세자의 기질은 그러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것이 결국 사도세자의 조울증을 키우게 됐고, 조울증을 이해하지 못했던 영조는 결국 사도세자를 뒤주게 가둬서 굶겨 죽인 것이다. 혹자는 노론의 음모 등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사도세자는 정통성을 갖춘 세자이기 때문에 조울증 현상을 보이는 거에 대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나이에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고 담대하게 바라봤다. 결국 아버지인 영조의 완벽주의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굶겨 죽이게 만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