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7월 20일 대한제국 순종 황제 대리 즉위
[역사속 오늘리뷰] 7월 20일 대한제국 순종 황제 대리 즉위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7.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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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순종 황제.
대한제국 순종 황제.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07년 7월 20일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대리 즉위를 한 날이다. 여기서 핵심은 ‘대리’ 즉위를 했다는 점이다. 고종 황제가 7월 19일 강제 퇴위를 당하고 20일 순종 황제가 즉위를 한 것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인해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정가에서 정치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나는 위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황제에게 밀서 전달

고종 황제는 헤이그 밀사를 통해 러시아 니콜라이 2세에게 밀서를 전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은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이난 상황이 됐다. 이토 히로부미는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당시 일본 신문은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면서 한국정부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이토의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일본 정가에서도 눈엣 가시와 같았던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하면서 이토를 향해 비난을 가했다. 궁지에 몰린 이토는 7월 3일 총리대신 이완용을 추궁했다. 그 이유는 이완용이 한때 친러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토 추궁에 이완용은 이번 사건에 내각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선처를 바랐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을 고종 황제가 져야 한다면서 고종 황제에게 물러나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고종황제 물러난지 하루만에

결국 7월 19일 고종황제는 물러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0일 순종 황제 즉위식이 열렸다. 그런데 양위식장에서는 고종 황제와 손종 황제 모두 불참했다. 이로 인해 내관으로 추정되는 인물 두 사람이 대역을 맡아 양위식을 올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물론 대역 즉위식이 유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한 사례는 아니다. 21일 이토는 ‘상오(十一点) 칠시에 중화전에서 권정례로 하였다더라’는 내용을 일본 외무 차관에게 보냈다. 그러자 일본 관료들 사이에서는 대리 양위를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국내에서는 대리 즉위 소식이 들리자 이완용의 집으로 몰려가 불을 질렀다. 대리 즉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나면서 결국 일본과 친일파 대신은 정식 즉위 날짜를 8월 27일로 정해놓고 그에 따른 준비를 했고, 결국 이날 정식 즉위를 했다.

양위 통해 정치적 난관 돌파

이토는 양위 및 대리 즉위를 통해 정치적 난관을 돌파했다. 어찌됐던 대한제국의 황제를 교체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이토의 정치적 입지는 넓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일본 정가에서 상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토의 최종 목표가 일본 총리가 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제국의 황제 교체는 일본 총리가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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