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황제에게 밀서 전달
고종황제 물러난지 하루만에
결국 7월 19일 고종황제는 물러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0일 순종 황제 즉위식이 열렸다. 그런데 양위식장에서는 고종 황제와 손종 황제 모두 불참했다. 이로 인해 내관으로 추정되는 인물 두 사람이 대역을 맡아 양위식을 올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물론 대역 즉위식이 유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한 사례는 아니다. 21일 이토는 ‘상오(12点) 칠시에 중화전에서 권정례로 하였다더라’는 내용을 일본 외무 차관에게 보냈다. 그러자 일본 관료들 사이에서는 대리 양위를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국내에서는 대리 즉위 소식이 들리자 이완용의 집으로 몰려가 불을 질렀다. 대리 즉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나면서 결국 일본과 친일파 대신은 정식 즉위 날짜를 8월 27일로 정해놓고 그에 따른 준비를 했고, 결국 이날 정식 즉위를 했다.양위 통해 정치적 난관 돌파
이토는 양위 및 대리 즉위를 통해 정치적 난관을 돌파했다. 어찌됐던 대한제국의 황제를 교체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이토의 정치적 입지는 넓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일본 정가에서 상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토의 최종 목표가 일본 총리가 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제국의 황제 교체는 일본 총리가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