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일본에 의해 아들 순종 황제에게 1907년 강제로 양위를 하자 망명을 시도했다. 그 대상지는 ‘러시아’의 ‘연해주’였다. 그 이유는 대한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상당히 돈독했기 때문이다.
비록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를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한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했다는 점에서 러시아로의 망명을 통해 임시정부를 세우고, 이에 독립운동을 전개하려고 했다. 이에 자금까지 연해주로 보내는 등 러시아로의 망명을 준비했고, 그 일환으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다.
러시아로의 망명
러시아로의 망명 시도는 1904년에도 있었다. 러일전쟁 속에서 고종황제는 러시아로 망명 가능성을 은밀히 타진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를 하면서 일단 망명 시도는 실패를 했다.
이후 1907년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됐고, 1908년 11월 망명을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 대일협상파에 의해 저지됐다.
그리고 1910년 6월 고종황제는 다시 망명을 시도하려고 했다. 이에 연해주 망명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
고종 황제는 연해주에서 무장 실력을 키우면서 ‘제2 러일전쟁’이 일어나면 연해주에서 무장봉기를 해서 한반도로 진격한다는 계획까지 세웠고, 이를 러시아에 알리기도 했다. 다만 항일 방법을 두고 고종 황제와 러시아 간의 다툼이 있으면서 망명은 실패가 됐다.
고종황제가 일본이 강제로 나라를 빼앗은 후에도 망명 시도를 했다. 1918년 마지막 망명 시도였다. 이때는 우당 이회영이 중심이 됐다.
이회영과 민영달은 북경에 행궁을 마련하기로 했고, 민영달이 행궁을 짓기 위해 5만원을 내놓았다. 이에 이회영은 1918년 말 동생 이시영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런데 고종 황제가 급서하면서 실패를 했다.
고종 독살설이 나오는 이유는 고종 황제가 망명을 시도한다는 소식이 친일파에 들어가서 독살을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1만 루블 갖고 연해주로
이 중에서 1908년 봄에는 이위종이 러시아 당시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해주 노보키예프스코예로 독립자금 1만 루블을 갖고 도착했다. 1만 루블은 고종 황제가 마련한 독립자금이었다.
당시 해당 도시에는 전신국이 설치돼 있었고, 항일의병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때 고종 황제가 마련해준 독립자금은 안중근 의사, 최재형 의사 등이 속해있는 대한독립군 조직인 동의회(同義會) 창설에 사용됐다.
따라서 대한의군(大韓義軍)의 최고통수권자는 고종황제이다. 고종황제는 연해주로 망명할 것을 염두에 두고 1만 루블을 마련해서 이위종에게 전달했고, 이위종은 그 돈으로 대한독립군 조직인 동의회를 창설했다. 그리고 대한의군의 최고통수권자는 고종황제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를 행했고, 이는 고종황제의 망명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만약 고종황제가 망명에 성공을 했다면 고종황제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됐을 것이고, 그에 따라 무장독립투쟁의 전개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