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19년 8월 1일은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 원효정 1정목에서 대륙고무가 설립됐다.
대륙고무주식회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검정 고무신, 고무공을 생산했다. 1922년 8월 5일부터는 ‘대장군 고무신’이라고 해서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친일파에서 기업인으로
설립자 이하영은 대표적인 친일파이다. 1876년 부산이 개항하면서 일본인 상점에 취직해 일본어를 배웠다. 그리고 선교사 알렌을 만나 요리사 자격으로 미국공사관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민영익을 간호한 인연으로 1886년 외무아문 주사로 임용됐고, 승승장구하면서 대한제국 중추원 의장이 됐고, 이후 의정부참정, 외부대신, 법무대신이 되면서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서명한 을사 삼흉이다. 1910년 한일병탄 당시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됐다.
그런데 1919년 느닷없이 기업인으로 탈바꿈을 했다. 처음에는 경성부 원효정 1정목에 설치했고, 사무실 뒤에 생산공장을 설치했다. 그리고 1920년에는 함경남도 원산군과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기장면, 평양 등지 등에 공장을 설치했다.
그러다가 1922년 8월 1일에는 500여 주주를 거느린 주식회사로 승격했다. 그리고 일본식 고무신을 개량해 전체를 고무로 만든 조선식 고무신을 개발했다. 이후 1922년 자본금 50만원의 대륙고무주식회사로 성장했다.
왕족 마케팅 시도
대륙고무주식회사는 고무신을 판매하면서 순종 황제를 마케팅으로 사용했다. 1922년 9월 21일자 신문에 낸 광고에는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순종)께서 이용하심에 황감함을 비롯하여 여관(女官) 각 위의 애용을 수하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족을 마케팅한다는 생각은 갖지 못했지만 일제강점기이기 때문에 왕족 마케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1929년 이하영이 세상을 떠나자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서 낮은 학식으로 갑자기 출세한 것을 비꼬기도 했다. 윤치호는 “그는 양반가문 출신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점잔을 빼며 처신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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