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3일 다부동 전투
[역사속 오늘리뷰] 8월 3일 다부동 전투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8.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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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서 벌어진 다부동전투에 참가한 여준구씨가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있는 전투 참가자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가리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50년 8월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서 벌어진 다부동전투에 참가한 여준구씨가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있는 전투 참가자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가리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50년 8월 3일은 다부동 전투가 실시된 날이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이면서 낙동강 전선 사수를 위한 전투이기도 했다. 다부동 전투에서 한국군이 승리를 하면서 북한의 대공세를 저지했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가게 됐다.

6.25 전쟁 발발하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7월 5일 오산 전투에서 미군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그러자 낙동강에서 국군과 미군이 전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낙동강 방어선만큼은 절대 내어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승만 정권은 부산을 임시수도로 삼았고, 왜관에서 낙성리까지 국군 제1사단, 낙성리에서 의성까지 제6사단, 현풍에서 왜관까지 미 제1기병사단 등 3개 사단을 배치했다. 그리고 지난한 전투가 시작됐다. 서로 밀고 밀리는 그런 전투가 8월 3일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8월 21일 북한 제13사단 정봉욱 중좌가 제11연대지역에서 작전지도를 갖고 귀순을 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유엔 전폭기 편대가 대거 출격해서 그가 알려준 북한의 포진지와 집결지를 강타하면서 북한 제13사단의 화력지원을 무력화시켰다. 북한의 전투력이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그에 따라 우리군과 미군은 점차 북한군을 제압하는 상태가 됐다.

인천상륙작전 발판 마련

다부동 전투에서 우리 군과 미군이 북한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다. 그것은 부산에 임시정부를 만든 이승만 정권과 미국이 대대적인 반격을 할 기회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반면 북한군은 다부동 전투에서 전력을 상당수 소진을 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 수복까지 이뤄지고,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우리 군과 유엔군이 진격할 수 있었다. 사실상 북한군이 다부동 전투에서 궤멸되다 시피 했지만 결국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북한군이 다시 살아났고, 이에 53년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지금까지 휴전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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