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취입 위해 일본으로
1926년 일본으로 간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취입했다. 해당 노래는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왈츠 ‘다뉴브강의 잔물결’ 멜로디에 별도의 가사를 덧붙인 번안곡이었다. 원래 녹음하려던 노래가 아니었는데 윤심덕이 갑자기 이 노래를 녹음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8월 3일 부산행 선박에 김우진과 함께 탑승했고, 그 다음날 갑자기 사라졌다. 조선 최초 ‘정사’(情死) 사건이었기에 신문에서 대서특필됐으며, 그로 인해 ‘사의 찬미’ 노래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당시 10만장이 판매가 됐다.투신자살이냐 도피냐
분명한 것은 김우진과 윤심덕이 같은 배에 탔다는 것이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만 유언장도 발견되지 않았고, 두 사람이 자살했다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각종 소문이 난무했다. 김우진과 윤심덕이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는지조차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신문에서는 ‘정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는 것을 단정했다. 당연히 김우진과 윤심덕 가족들은 ‘정사’라는 단어를 부인했다. 그리고 자살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생존설’ ‘사고설’ ‘타살설 등이 제기됐다. 심지어 유럽에서 윤심덕과 김우진을 봤다는 목격자도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레코드사가 윤심덕 앨범을 판매하기 위해 죽음을 가장하고 유럽 등으로 잠행하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1931년 이탈리아에서 잡화점을 하는 동양인 부부가 있었고, 김우진 윤심덕이라는 소문이 돌자 김우진 김우진 동생은 당시 총독부를 통해 주이탈리아 일본대사관에 확인을 요청했다. 결국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