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7일 과달카날 전투 개시
[역사속 오늘리뷰] 8월 7일 과달카날 전투 개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8.07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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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전투 그린 영화 과달카날 다이어리
과달카날 전투 그린 영화 과달카날 다이어리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2년 8월 7일은 솔로몬 제도 과달카날과 그 주변에서 미국과 호주 그리고 현지 원주민 연합군과 일본 게국 사이에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가 개시한 날이다. 1943년 2월 9일까지 벌어진 전투로 장시간 벌어진 전투이면서 일본 제국의 몰락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흔히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기세가 꺾었다고 알려졌지만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도 전세는 비등했다. 하지만 과달카날 전투 이후 일본 제국의 군사력은 급격히 쇠퇴했다.
과달카날 전투 그린 영화 과달카날 다이어리 한 장면.
과달카날 전투 그린 영화 과달카날 다이어리 한 장면.

미드웨이 해전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승리를 했지만 일본군 특히 해군의 군사력은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잇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박살났지만 전함 등은 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서태평양 도서를 요새화한 일본 제국은 태평양 전역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여기에 인도양 방면에 투입됐던 항공모함 기동부대인 5항공전대와 2항공전대 등이 보충되면서 비록 예전의 1, 2항공전대와 같은 능력은 아니었지만 미군 연합군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기 충분했다. 이런 가운데 1942년 일본 제국은 톨라기 섬, 플로리다 섬, 과달카날 섬 등에 상륙했고, 비행장을 건설했다. 비행장을 건설한 것은 항공모함이 박살났기 때문에 이동식 비행장인 항공모함 대신 고정식 비행장 건설에 나선 것이다. 그러자 미군 연합군은 위협을 느끼게 됐고, 과달카날 섬을 점령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됨년서 8월 7일 미 해명대를 주축으로 육상전력을 투입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전투를 이어가게 됐다.
과달카날 전투 그린 영화 과달카날 다이어리 한 장면.
과달카날 전투 그린 영화 과달카날 다이어리 한 장면.

애당초 힘든 전투

과달카날 전투는 오랜 시간 이어진 전투였지만 결국 일본군을 동부뉴기니 북쪽으로 몰아냈다. 일본은 전함이 미군에 비해 우세였지만 미군 연합군의 물량공세를 일본 육군이 막아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승리는 연합군에게는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게 되면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게 했다. 그러면서 1943년 상반기는 미군 연합군은 호주에서 휴식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1943년 6월말부터 솔로몬 제도와 동부뉴기니 일대에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일본군은 비록 과달카날에서 패배를 했지만 계속해서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미군 연합군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미 과달카날에서의 소모전은 일본군에게는 큰 타격이 됐다.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연합군도 마찬가지였지만 연합군은 미국이라는 막대한 경제력 앞에서 그 피해를 메워나갔다. 미국 본토에서는 계속해서 전투물자를 생산해나갔다. 미국은 한달에 1척 꼴로 항고모함을 생산해 나갈 정도로 물량공세를 펼쳤다. 반면 일본군은 이미 군수물자에 대한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이에 한반도와 만주 등에 전시동원령 등을 내렸지만 미국의 물량공세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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