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 치마 들춰내
일본인도 치를 떨어
그 이후 1917년 일본인은 고종황제에게 도쿄로 가서 일본 왕에게 ‘한일합방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게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적임자로 이완용을 선택했다. 이에 이완용은 고종 황제에게 가서 이같은 요구를 했지만 고종황제는 나라를 빼앗겼을지언정 일본 왕에게 가서 절은 못하겠다면서 완강히 거부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윤덕영이 나서기 시작했다. 윤덕영은 왕가 재산들에 직접 빨간 딱지 즉 압류를 가했다. 그래도 고종 황제가 거부를 하자 이번에는 고종황제의 과거 여성편력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지만 계속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덕영은 집요하게 요구를 했고, 고종 황제는 순종 황제를 도쿄로 보내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에 윤치호는 “저자의 친일은 영어로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일본사람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할 정도였다.벽수산장
윤덕영은 친일파 중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벽수산장만 봐도 엄청나다. 집에는 능금나무밭, 자연숲, 한옥 99칸, 하천 등이 있어서 총 2만평에 달했다. 이는 이완용 땅의 4배이고, 축구장 8개 면적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옥인동의 약 54%, 서촌 부지, 수성동계곡, 배화여자고등학교, 인왕산 자락이 모두 벽수산장 터이다. 이밖에도 한일병탄의 공로로 자작과 매국 공채 5만원을 받았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