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으로만 구성하려고 했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은 일본선수들만 내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워낙 실력자이기 때문에 결국 대표팀에 발탁했다. 실제로 두 선수를 탈락시키기 위해 대표선발전에서 일본 육상계는 온갖 비열한 짓을 했다. 우선 일본 선수 2명을 후보로 추가시켰다. 그리고 일본선수들이 몰래 코스를 이탈해서 지름길로 가는 반칙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선수는 사이좋게 1위와 2위를 기록했다. 결국 일본선수들은 남승룡 선수의 뺨을 때리면서 격분을 했다. 일본 언론은 ‘조선인이 대일본제국의 대표라는 것이 말이 되냐’는 여론을 형성했다. 그리고 8월 9일 올림픽 본선에서 ‘2시간 29분 19초’로 당시 올림픽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고, 남승룡 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남승룡 선수는 막판에 스퍼트를 내면서 무려 30명을 추월해서 3위로 골인한 것이다.일장기 말소 사건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단상에 올랐고, 손기정 선수는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남승룡 선수는 바지를 명치까지 끌어올려 일장기를 가리려고 했다. 남승룡 선수는 훗날 손기정 선수가 부러웠던 것이 금메달을 획득해서가 아니라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어서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는 금메달을 받고 아돌프 히틀러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히틀러를 공식적으로 만는 유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는 경기 직후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슬프다”고 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 조선총독부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귀국했을 때 조용히 귀국을 시켰다. 흔한 환영인파 등이 없었다. 이 상황 속에서 조선중앙일보는 8월 13일, 동아일보는 8월 13일자 지방판에서 원래 사진의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 부분을 덧칠해서 지워버리고 보도했다. 결국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고 동아일보는 정간됐다.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의 메달 소식의 불똥은 독일에도 튀었다. 당시 히틀러는 독일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올림픽을 베를린에서 열게 했고, 마라톤에서 승리를 함으로써 전세계에 독일인의 우수성을 알리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메달을 차지하면서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56년 지나 몬주익 영웅이
그리고 56년이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내걸고 받은 사상 첫 마라톤 금메달이면서 현재까지 유일한 금메달이다. 당시 급경사 난코스인 ‘몬주익 언덕’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통해 2·3위로 뒤쫓아오던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 선수와 독일 선수 ‘스테판 프라이강’ 선수와 크게 차이를 벌이고 1위로 골인한 후 쓰러지면서 ‘몬주익의 영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메달을 획득해서 평생 한이 됐는데 그것을 황영조 선수가 씻어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